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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장 ‘깜깜이·돈선거’ 그만…선관위가 나섰다

등록 :2019-04-08 18:55수정 :2019-04-08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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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관위-한겨레 신문 공동기획]
돈선거 오명
거리유세·토론회·정책발표회 금지
후보자, 조합원 몰라 ‘표 매수’ 성행
선거 한달만에 기부행위 고발 125건

기울어진 운동장
선거인 명부 현직 조합장이 책임
현 조합장·조합 직원 출신 유리
당선자 10명중 7명은 재당선

국회제출 개정 의견은
정책발표회·인터넷 선거운동 허용
“누가 봐도 상식적 수준 개정안”
이번엔 국회 문턱 넘을지 주목
2015년 11월25일 전남 무안 농협 전남지역본부 대강당에서 전남지역 전체 조합장들이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앞두고 선거 중립을 다짐하는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11월25일 전남 무안 농협 전남지역본부 대강당에서 전남지역 전체 조합장들이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앞두고 선거 중립을 다짐하는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후보자도, 조합원도 모르는 ‘깜깜이 선거’ ‘돈선거’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8일 국회에 전국동시조합장선거 개선을 위한 법 개정 의견(‘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을 제출했다.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지난 3월13일 중앙선관위 위탁 아래 치러진 지 한달 만이다. 일부 의원이 발의한 위탁선거법 개정안이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어, 이번에야말로 국회가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위탁선거법 개정 없이 지난 3월13일 치러진 조합장선거는 벌써부터 소송전에 휘말릴 조짐이다. 중앙선관위는 “전체 조치 건수는 줄었지만, 기부 행위 고발 건수는 2015년 107건에서 올해 125건으로 오히려 증가했다”고 밝혔다. 금권선거 추방을 위해 신고 포상금을 기존 1억원에서 올해 3억원으로 올렸지만 큰 소득이 없었던 셈이다.

조합장 선거는 전국 농업협동조합, 수산물협동조합, 산림조합 등의 대표를 직접 투표로 선출하는 선거다. 조합장은 해당 협동조합의 대표권과 인사권, 지역 특산물 축제 등의 사업진행권 등을 가지며 최대 2억원의 연봉이 지급돼 경쟁이 치열하다.

문제는 유권자들이 후보자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없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선거는 ‘깜깜이’ 선거라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후보자들은 정책과 공약으로 승부하기보다 ‘표 매수’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현행법상 조합장 선거는 거리 유세도, 토론회도, 정책발표회도 할 수 없다. 지방선거 등 여타 공직선거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지난달 경기 지역의 농협조합장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ㄱ씨는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어진 선거운동 기간은 단 13일. 그는 “(법적으로 허용된) 전화로만 선거운동을 하려고 해도, 조합원들의 전화번호를 확보할 법적 수단이 없었다”며 “알릴 기회가 있는 현직(조합장)이나 (농협)직원 출신 후보들이 아무래도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당선자와 2위 후보자의 표차가 4표에 불과했던 2015년 고성축협조합장 선거에서는 ‘가짜 조합원’ 논란까지 빚어졌다. 무자격 조합원 문제는 해묵은 논란거리지만, 법 개정이 지연되면서 조합의 자체 단속에 기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선거 위탁 관리는 선관위가 맡지만, 선거인 명부 작성과 관리는 현직 조합장이 책임지도록 분리한 것부터가 문제 소지가 다분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지역의 농협 조합원 ㄴ씨는 “현직 조합장이 자신의 표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역 영농회장과 각 지점장에게 무자격 조합원의 가짜 임대차계약서나 거소증명서류에 도장을 찍어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시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실시한 농협 조합원 실태조사에서는 조합원 194만여명 가운데 무자격 조합원이 7만명이 넘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조합장을 두번 이상 연임할 수 없도록 하는 농협중앙회 규정 역시 유명무실하다. ‘비상임 조합장’은 연임이 가능하다는 정관 때문이다. 현직 조합장의 연임률이 70%를 넘는 배경이다. 농협중앙회가 2015년 첫 조합선거 때 선출된 조합장 1109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697명 가운데 3선 이상 조합장이 36.1%나 됐다. 심지어 8선(3명), 9선(1명) 조합장도 있었다.

이번에 선관위가 국회에 제출한 개정 의견은 정책발표회 신설, 후보자 전과기록 게재, 예비후보자 제도 신설, 인터넷 선거운동 허용 등 선거인들의 ‘알 권리’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대가를 제공하거나 약속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도 새로 담았다. 관련 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는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상식적 수준의 개정안조차 기득권을 가진 현직 조합장과 지역구 국회의원의 이해관계 등이 얽혀 법안 처리가 진전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에선 관심 법안이지만, 선거법을 처리해야 하는 행정안전위원회에선 그렇지 못한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예비후보 제도 신설…50일전부터 전화·명함 선거운동”

공보엔 후보자 전과기록 게재

조합원 명부 정비 의무화도

선거인 ‘알 권리·’ 공정성 확대

조합장 선거는 선거운동원을 두지 못한다. 심지어 배우자가 선거운동을 돕는 것도 불법이다. 개별 접촉은 물론이고 거리 유세도 금지된다. 정책발표회나 후보자 토론회도 없다. 홍보 방법도 제한적이다. 휴대전화로 선거운동을 할 수는 있지만, ‘사진’은 보낼 수 없다는 규정도 있다. 후보자가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것은 공보물뿐이다. 조합원들은 이 때문에 후보자의 정책도 잘 모르고 투표장에 간다. ‘연줄’과 ‘금권’이 위세를 떨치는 이유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8일 국회에 낸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 개정 의견은 유권자의 알 권리와 후보자의 선거운동 보장, 금품수수 유혹을 방지하기 위한 개선책 등을 담고 있다.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는 입법 권한이 없어 국회에 입법 의견을 내는 형식을 취했다.

개정 의견을 보면, 무자격자가 선거인 명부에 오르지 않게 조합원 명부부터 의무적으로 정비하도록 했다. 선거인 명부 작성 때 지방자치단체의 주민등록 전산정보자료를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담았다. 위탁단체 사무소 등으로 제한된 선거벽보 부착 허용 장소도 확대하고, 선거공보엔 후보자의 전과기록을 의무 게재하도록 했다.

선거운동의 허용 범위도 넓혔다. 예비후보자 제도를 신설해 선거 기간 개시일 50일 전부터 전화나 누리집, 명함 등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했다. 현행 공직선거와 마찬가지로 후보자 외에 배우자 등의 선거운동을 허용하고, 장애인 후보자의 경우 활동보조인도 둘 수 있게 규정을 신설했다. 또 현직 조합장이 아닌 후보자라도 선거인의 전화번호를 조합에 요청해 선거운동에 활용할 수 있게 형평성을 제고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administration/889245.html?_fr=mt2#csidxca0bde0c2376789b4680195f31bc09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