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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도 문외한, 정치에는 더 문외한이다. 하지만 4.11 총선 뒤 정국이 어떻게 흘러가는가 하는 것은 <인사이드 경제>가 가장 관심 있는 '먹고 사는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치와 경제는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 들어와서 먹고 사는 문제, 즉 '경제' 문제가 각종 선거의 핵심 이슈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던가?

4.11 총선은 '먹고 사는 문제'와 무관?

있었다! 이번 4.11 총선이 그러하지 않았는가? 이번 선거만큼 '경제' 문제가 무시당한 적이 없었다. 특히 야권연대 진영에서 두드러졌는데, 모든 쟁점은 결국 "집권세력(=MB) 심판"으로 수렴되었다. 때마침 터져나온 민간인 사찰 파문은 이런 현상에 기름을 부었다. 하다못해 이명박 정권 심판을 위해 '7-4-7' 공약이 물거품이 되었음을 지적하는 모습도 거의 보기 힘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은 2007년 대선과 비교된다.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에 아무리 흠집을 내려 해도, 그가 내건 "경제, 반드시 살리겠습니다"라는 쟁점을 넘어설 수 없었다. 지난 대선에서는 아무리 정치적 쟁점을 제시해봐도 경제 문제로 수렴됐다. 반대로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은 복지·민생·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았지만, 야권은 모든 쟁점을 집권세력 심판으로 귀결시켰다.

상대적으로 야권에 비해 새누리당은 민생 문제를 강조한 편에 속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를 비롯해 노동자 밀집지역에 출마한 일부 후보들은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공약까지 내걸었다. 민주노총의 이른바 '1-10-100' 계획(한 번에 열 개 법안을 100일 안에 쟁취한다는 계획)과 비견되는 것으로서, 새누리당은 '가족 행복 5대 약속'을 100일 내 맞춤형 입법화한다는 공약을 내세우기도 했다. 우선입법과제 핵심에는 비정규법(기간제법, 파견법) 개정과 사내하도급법 제정 등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을 차지한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새누리당의 민생 공약은 오히려 야권연대의 '민간인 사찰 MB 심판'이라는 정치 쟁점에 묻혀 크게 이슈화되지 못했다. 노동자 민중이 먹고 살만한 사회가 된 것도 아닌데, 4.11 총선은 그런 문제를 제대로 토론하지 못한 선거가 되고 말았다.

▲ 지난 3월 28일 출범한 민주통합당 산하 'MB·새누리 심판 국민위원회' ⓒ뉴시스

명박천하 가고 검찰천하 도래?

선거가 끝난 후 많은 이들이 '미래 권력 박근혜'의 세상이 열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4.11 총선의 최대 승자가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임에는 틀림없지만 아직 대권을 거머쥔 것은 아니다. '이명박근혜'라는 단어가 회자되기는 했지만, 새누리당과 박근혜 비대위원장 입장에서는 이명박 정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명박 정권은 급속하게 '과거 권력'이 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일정한 과도기가 펼쳐지게 되는데, 엉뚱하게도 검찰이 이 시기의 주도권을 쥘 것으로 보인다. 우선 총선 시기에 민간인 사찰 재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노무현 정권 시기에도 조사심의관실 주도로 민간인 사찰이 이뤄졌다"는 청와대·새누리당의 방어 공세에 대해 조심스럽게 "노무현 정권 시기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 시기의 것만 수사하고 있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어라? 이거 이명박 정권의 검찰이 한 말 맞아? 뭔가 수상쩍다. 노무현 정권 시기의 사건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뒤지던 검찰 아니던가? 검찰이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들을 확보하지 않고서, 과연 현 정권에 대해 이 정도의 자신감 있는 멘트를 쏟아낼 수 있을까?

또 한 가지 있다. '참고인' 신분으로 부를 때는 출두도 않고 입도 열지 않던 공직윤리지원관실 진경락 전 과장이, 오히려 '피의자' 신분이 되자 자진출두 후 입을 열기 시작한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게다가 그가 입을 연 대목은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증거인멸' 요청을 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현재 법무부장관인 권재진 씨임을 감안하면, 검찰이 이 사실을 공개한 것 역시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권재진 장관의 거취 문제와 상관없이, 향후 검찰 수사에 현 정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좁아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 권력'을 놓고 여야 대권 주자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사이, 당분간 '과거 권력'의 명줄은 검찰이 쥐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렇다면 결론은? 검찰은 핵심적인 증거와 증인들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민간인 사찰 사건을 비롯한 과거 권력에 대한 검찰 수사는 계속될 것이고, 대선 때까지 핵심적인 정치 쟁점으로 비화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먹고 사는 문제'는?

과거 권력에 대한 수사, 여야 대권 주자들의 각축전으로 온 국민의 시선이 쏠리는 사이, 전세계적 경제위기의 여파는 점점 한국을 위협하기 시작하고 있다. 4.11 총선이 치러지던 바로 그 시기에 유럽과 미국 증권시장은 다시한번 폭락을 거듭했고, 그리스 채무위기 문제는 이제 스페인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여파는 정치권도 강타했다. 웬만한 유럽 국가들에서 스페인의 경우처럼 선거를 통해 과거 권력이 심판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심지어 세계 자본의 입김에 따라 그리스와 이탈리아처럼 선거도 통하지 않고 정권이 교체되는 일을 겪기도 했다. 이제 독일과 함께 유럽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프랑스에서도 정권 교체가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의 4.11 총선은 세계 경제위기의 바람과 거의 무관하게 치러진 듯하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권이 교체된 핵심 이유는, 과거 권력이 경제를 망쳐먹었다는 대중의 불만 때문이었다. 사회당이 권력을 쥐고 있건, 보수세력이 권력을 쥐고 있건, 유럽 대중의 선택은 과거 권력의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심판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총선에서는 경제정책이 거의 쟁점조차 되지 않았고, 과거 권력에 대한 심판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는 유럽에 비해 위기를 덜 타고 있었다는 뜻일까? 사실이다.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어김없이 재정긴축과 복지 삭감이 논의되었는데, 한국에서는 지난해부터 '복지 논쟁'이 벌어지는 기현상을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위기를 '덜' 타고 있었을 뿐, 세계 경제의 격랑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래의 경제 지표들을 보면, 한국에서 왜 경제 문제가 핵심 쟁점이 안 되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위 자료는 한국은행이 발표한 수치를 바탕으로 그린 그래프인데, 기업 소득은 해마다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는 반면, 가계 소득은 한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는 등, 기업 소득 증가율이 가계 소득 증가율의 2~3배에 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 자료의 노동소득 분배율(단위 : %)은 한국은행이 발표한 수치이고, 10대그룹 사내유보율(단위 : %)은 매년 연말 기준으로 한국거래소와 상장사협의회가 발표한 수치를 바탕으로 그려본 그래프이다. 전체 국민소득에서 노동의 몫은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기업이 벌어들여 금고에 쌓아놓은 돈은 천정부지로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기를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시켜온 시스템,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까?

앞의 자료들을 토대로 상황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한국 경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위기를 덜 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기업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만 그럴 뿐이다. 실제로 사내유보율과 기업소득 증가율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반대로 노동자를 비롯한 평범한 가정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 경제는 다른 나라 못지않은 위기를 겪고 있다. 경제위기를 끊임없이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시킴으로써, 외관상 기업의 이윤율을 비롯한 각종 수치는 한국 경제가 위기가 아닌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킬 뿐이다."

여기에 또 다른 착시현상 요소가 존재한다. 일체의 경제·사회적 쟁점을 'MB 심판'이라는 문제로 모조리 환원시켜 버리는 마이다스의 손, 야권연대의 존재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이 추진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MB 탓, 김영삼 정권의 시도를 넘겨받아 김대중 정권이 도입했던 정리해고·근로자파견제도 MB 탓, 노무현 정권이 밀어붙인 비정규직법도 MB 탓…. 모두가 집단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것일까?

하지만 앞에서 본 것처럼 노동자와 평범한 가정들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에도, 이명박 정권 시기에도 끊임없이 경제위기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현재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위기 상황은 째깍째깍 시한폭탄처럼 한국으로 옮겨오고 있다. 시한폭탄의 뇌관이 될 지뢰밭이 곳곳에 숨어 있다.

△ 유가 폭등

총선이 끝나자마자 이명박 정권이 제일 먼저 한 것은 기름값 대책 발표였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를 제외한 모든 수단을 다 내놓았다. 핵심적으로는 정유 4사(SK,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가 97%를 독점하고 있던 정유 시장에 새로운 경쟁자로 삼성 계열사인 삼성토탈을 투입한 것이다.

삼성토탈은 앞으로 석유공사를 통해 알뜰 주유소에 저가로 기름을 공급하게 되는데, 그래봐야 기름값은 몇십 원 떨어지는 효과를 낼 뿐이다. 특히 1850원대를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경유값의 등락폭에 따라, 화물트럭 기사들을 비롯한 운수업 노동자들의 생계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 조선업 위기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해 중소 조선소의 부도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수주 물량이 떨어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수주 물량이 떨어지면서 '저가 수주 경쟁'이 불 붙었는데, 배를 많이 건조해도 이윤이 얼마 남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나마 현금보유액이 많은 대형 조선소는 버티고 있는 반면, 자금 사정이 허약한 중소 조선소들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세계 최대의 선주사들이 몰려 있는 유럽의 재정위기로 인해, 유럽 선주사들은 발주한 선박 주문조차 취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LPG선이나 LNG선을 취소하고 벌크선으로 바꾸거나, 심지어 이미 건조한 선박에 대한 인도를 포기하는 일도 벌어진다. 조선업의 새로운 시장으로 각광받았던 드릴쉽이나 해양 플랜트 물량조차 취소되는 일이 벌어져서, 최근 대형 조선소에서도 일감이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조선업 위기는 곧바로 한국의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 위기로 이어진다. 이미 정규직의 규모를 훌쩍 넘어버린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규모를 자유롭게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자본가들이 위기에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소 조선소 곳곳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하청업체의 폐업·도산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체불임금도 엄청나게 쌓여가고 있다.

△ KTX 민영화, 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

이 문제 역시 마이다스의 손, 야권연대는 모조리 MB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쟁점이 거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 비해 한국 정부의 재정 상태는 건실한 것처럼 보이지만, 공기업이 안고 있는 부채를 포함하면 한국 역시 만만치 않은 재정위기 앞에 직면해 있다.
민영화를 통한 특혜는 당연히 거대한 KTX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재벌들에게 돌아가겠지만, 정부는 이런 방식으로 공적 사업들을 하나둘씩 팔아치우며 공기업과 정부 부채를 메우려 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처럼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 민중에게 지불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우리는 KTX 민영화와 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이라는 방식으로, 유럽 노동자들이 겪었던 '재정긴축 정책'을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공공부문 인원 감축이나 임금 삭감, 연금·복지 축소 등의 공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 가계 부채 1000조 시대

정부가 위기를 노동자와 평범한 가정에게 전가해온 탓에, 정부의 재정위기 이전에 가계 부채 위기가 먼저 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008년에 미국에서 발생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바로 가계 부채 위기의 결과물이니 말이다.

주택담보대출을 장려하다가 부동산 거품이 폭삭 가라앉자, 늘어나는 이자 부담을 이기지 못해 많은 노동자와 가정들이 파산하게 된다. 결국 이들에게 빌려준 돈은 부실대출이 되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주요 업무로 하던 금융기관의 파산으로 이어진 것이 바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였다. 가계 부채가 1000조 원을 돌파한 한국의 상황을 돌아보자. 과연 2008년 미국의 상황과 멀리 떨어져 있는가?

△ 부동산 경기 부양 대책

기름값 대책에 이어 이명박 정권은 곧바로 부동산 경기 활성화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총선이 끝나자마자 이런 대책 수립에 착수했다는 것은, 정권 스스로 경제위기의 징조를 상당히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부동산 거래량이 엄청나게 줄어들자, 한국에서도 미국처럼 부동산 거품이 폭삭 가라앉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이명박 정부가 준비하는 대책은 '거품의 크기를 더욱 키우는 방식'이다. DTI 규제를 완화 또는 폐지하는 것, 강남 지역을 투기지구에서 해제하는 것 등이 논의되고 있다.

부동산 거품을 더 키워서 거래량을 늘리겠다는 것인데, 당장 몇 개월 동안을 버틸 수 있는 대책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동산 거품이 터질 경우에는 예상보다 훨씬 큰 후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자, 시한폭탄들이 째깍째깍 작동을 시작했다. 이 모든 문제는 노동자 민중의 '먹고 사는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런 문제들까지 모조리 MB 탓으로 돌리기만 하면 해결되는 것일까? 다시 한 번, 앞으로의 핵심 쟁점은 대권을 둘러싼 권력 쟁투가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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