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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개혁 없인 농업 개혁 없어”

이호중 농어업정책포럼 상임이사 인터뷰
“조합장 권한 너무 비대… 축소해야”

제1252호
등록 : 2019-03-04 12:31 수정 : 2019-03-0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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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업정책포럼 제공

“농협은 농업계의 재벌이다. 문재인 정부가 재벌 개혁에는 힘을 쏟으면서, 농협 개혁엔 무관심하다. 왜 그런가. 첫째, 농협 개혁의 국민적 공감대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둘째, 농협 개혁을 외치는 주체 세력이 사라졌다. 농협 개혁을 끌고갈 조합원 조직이 있는가. 농민단체도 더 이상 농협 개혁을 크게 외치지 않는다. 10~20년 외치고 또 외치다가 거듭 좌절하면서, 이제 많이 지친 것 같다.”

이호중(사진) 농어업정책포럼 상임이사는 인터뷰 내내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2015년 시작된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전국적인 농협 개혁을 추동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했으나, ‘깜깜이 선거’의 벽에 다시 막힌 것이다. 그러나 그는 “농협 개혁은 농업 개혁으로 가는 피할 수 없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농어업정책포럼은 지난 2017년 대통령 선거 때 문재인 후보의 농업정책 특보단 중심으로 240명이 활동하고 있고, 16개 분과로 나눠 농업 분야의 각종 정책을 개발하고, 입법·예산과 관련한 제안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농협 개혁 외면”

농민단체들이 왜 농협 개혁에 적극 나서지 않을까.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쌀값 인상 요구 등 거대 담론에 매달리고 있다. 중앙정부에 요구하는 식의 과거 운동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는, 좀 달라졌으면 한다. 지역과 마을에서 협동조합을 통해 자치활동의 밑바탕을 마련하는 일에 더 힘을 쏟았으면 좋겠다. 또 다른 농민단체는 회원 300명 이상이 조합장에 당선되면서, 이미 농협의 기득권자가 됐다.


정권 바뀔 때마다 농협 개혁을 외쳤는데, 뚜렷한 성과가 없다.

답답하다. 하지만 농협 개혁 없인 농업 개혁도 없다. 외통수다. 구체적으론 두 가지 길이 있다. 농협에 참여해 개혁하는 길과 새로운 협동조합을 세워 농협을 견제하고 개혁을 추동하는 길이다. 농민단체들이 둘 다 등한시한다.

깜깜이 선거 문제점이 뻔히 다 드러났는데, 왜 위탁선거법을 고치지 못하는가.

농식품부와 농협중앙회도 이제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는다. 정책토론회는 허용하자는 쪽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위탁선거법 개정이 국회에서 또 좌절됐다. 안타깝다.

선거 현장에선 실제로 어떤 문제가 벌어지고 있나.

예를 들어보자. 경북 의성은 군민이 5만4천 명인데, 의성축협 조합원이 1500여 명 정도 된다. 누가 조합원인지 어떻게 알겠나. 현직 조합장이나 직원 출신 후보자한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음성적인 ‘돈선거’도 오히려 조장된다. 면 단위로 아는 사람 내세워서 은밀하게 접촉한다. 통계상으로는 과거보다 ‘돈선거’가 줄었다고 하나, 현장에서 체감하기론 달라진 것이 없다. 후보자와 조합원이 만날 수 있는 토론회와 간담회 같은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것을 선거법이 가로막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무자격 조합원 논란이 계속 불거지고 있다.

고령화 등으로 농사짓지 않는, 이른바 무자격 조합원이 꾸준히 늘어난다. 이번에 경북의 안동·봉화 축협에서 일이 터졌다. 무자격 조합원이 400명 정도인데, 조합장이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200명의 자격은 유지하고, 반대쪽으로 여겨지는 절반만 정리했다. 이런 전횡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위탁선거법 오히려 음성적 돈거래 조장”

그는 조합장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입법·사법·행정의 권한을 다 쥐고 있다”는 것이다. “비상임 조합장들이 실질적으로는 상임하는가 하면, 조합장이 대의원회 의장과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동시에 맡는다. 제도상으론 견제 장치가 만들어져 있지만, 현실에선 작동하지 않는다. 이사들도 조합장 입맛에 맞는 비전문가들로 채우기 일쑤다.” 법 취지대로 비상임 조합장은 무보수 명예직으로 가고, 억대 고액 연봉과 특권도 제어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이명박 대통령 때 농협이 금융과 경제 양쪽의 지주회사 체제로 바뀌었다. 어떻게 평가하나.

전체 농협의 주인은 조합원이고 그들로 구성된 지역(회원)조합이다. 그런데 지주회사 체제에서 회원 조합은 뒷전으로 밀리고 자회사들의 자기 이윤과 실적의 논리로 움직인다. 지주회사 체제는 회원 조합의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농협이 갈 길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는 회원 조합끼리 모여 자유롭게 연합사업을 벌여야 한다. 그렇게 품목별 연합사업이 활발해져야 한다. 지금 농협 전체를 통틀어 품목별 연합회는 고작 3개에 불과하다. 한우, 양돈, 과수 쪽에서 소규모 사업을 벌이고 있다. 회원 조합들 간의 품목별 연합사업체를 세우려 하면, 중앙회에서 딴지를 걸기 일쑤다. 중앙회에서 직접 벌이는 사업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협동조합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농협 스스로 발상을 바꿔야 한다. 중앙회에서 먼저 나서서 회원들 간의 연합사업을 장려해야 한다.

그는 “농협중앙회서에 연합사업 또는 연합회 설립을 지원하는 상설 기능을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품목별 연합사업을 활성화하기에, 일선 회원 조합의 사업 역량이 취약하지 않나.

거꾸로 생각해보자. 그렇게 연합사업을 벌여봐야 조합원들의 역량이 쌓이지 않겠나. 조합의 이사회와 대의원 구성도 확 바꾸자. 지금은 조합장과 가까운 비전문가들이 조합을 끌어가는 자리를 차지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직접 생산자 조직을 꾸려본 이들이 조합 이사와 대의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물꼬를 트자.

시도별 지역연합회 설립도 주장했나.

우리는 중앙회 직원이 광역지자체의 조합들을 총괄하는 본부장을 맡는다. 이제는 각 도의 회원 조합이 지역연합회를 설립하고, 자치 농정 시대에 걸맞은 도 농정의 대표자를 조합장들이 직선으로 뽑아야 한다. 중앙회에서 내려보낸 직원이 아니라 조합장들이 스스로 뽑은 도 단위 대표인 셈이다. 그 사람이 도지사의 농정 파트너가 되고, 농협중앙회의 당연직 이사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