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참여마당

자유게시판 로그인 없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주차관리·택배 업무 금지에..경비원 대량해고 우려

안재용 이건희 강기준 기자 입력 2017.11.23. 04:35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the300]'경비원의 부당한 업무' 금지한 법안 통과 후 입주민과 경비원 간 갈등 '격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4차 전경 /사진=이재윤 기자

#지난 16일 압구정 현대아파트 게시판. 경비원을 용역으로 전환하겠다는 공고가 붙었다. 경비원에게 주차관리, 택배, 분리수거 등을 강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경비원들은 반발했다. 용역으로 전환되면 고용 불안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진앙지는 ‘공동주택 관리법’이다. 국회는 지난 3월 공공주택에서 근무하는 경비원에게 본연의 업무를 넘어선 부당한 지시를 금지하는 개정안을 처리했다. 경비를 벗어난 업무 지시 금지는 이미 경비업법에 규정돼 있었는데 실제 현장에서 준수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해당 조문이 신설됐다. 개정안은 지난 9월22일부터 시행됐다.

/사진=강기준 기자

경비원들은 법 통과를 환영했다. 여론도 우호적이었다. 최저임금을 받으면서도 본래 영역을 넘어서는 업무를 강요당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부 아파트에선 분리수거 등의 업무를 하지 않으려는 경비원과 입주민 간의 갈등이 불거졌다. 문제는 택배, 주차, 분리수거 등의 업무가 아파트 주민에게는 필요한 일이라는 것. 맞벌이의 보편화 후 낮 시간에는 택배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경우 주차관리 업무가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1976년부터 1987년의 기간 동안 건설됐다. 최대 40년이 지난 아파트인 만큼 주차 공간 부족은 고질적인 문제였다. 주민들은 경비원에게 차 키를 맡겨 필요한 경우 주차된 차를 이동시키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입주민들은 주차업무를 수행하는 경비원들에게 20만~30만원의 추가수당을 지급했으나 휴식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등의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용역전환 결정과 경비원들의 반발은 불완전한 제도 속에 이미 내재돼 있었는데 법 개정으로 부당 지시가 금지되며 표면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터진 문제가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도 발생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주차관리나 택배, 분리수거 업무를 전담하는 인력을 별도 고용하는 것이 해결책이지만 쉽지 않다. 주민들이 관리비 상승에 반대하는 경우 전담인력 고용을 위해 경비원들이 해고될 가능성도 있다.

◇부작용 검토 안 돼…국회 대책 '고민'=공동주택관리법은 국토교통위원회(국토위) 문턱을 어려움 없이 넘었다. 법안 검토보고서에는 "공동주택 근로자에 대해 부당한 업무 지시(민원처리, 청소, 주차관리 등) 사례가 빈번히 발생해 개정안은 필요한 입법조치"라고 기술됐다.

보고서 각주에 전국 아파트입주자대표연합회가 "근로자를 업무범위에 따라 채용해야 하므로 입주민의 관리비 부담이 증가하고, 경비원 등 단순 근로자 감축이 우려돼 단지내 계도 등을 통해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국토교통부에 제출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해당 조항은 부작용 토론 없이 국토위 법안소위,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법안 시행 후 일부 아파트 입주자와 경비원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는 등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국회도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한 국토위 관계자는 "해당 법은 사실상 선언적·권고적 규정으로 경비원 분들을 배려해 달라는 차원으로 발의돼 통과된 법"이라며 "만약 이 법을 근거로 직고용 경비원을 해고한다면 부당해고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관련 문제에 대해 최근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어 고충을 듣는 등 법이 현장에서 잘못 적용되는 문제에 대해 전반적으로 재검토 중"이라며 "경비원 분들의 해고 우려는 근로계약의 문제인만큼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등에서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국회 환노위의 한 여당 관계자도 "좋은 취지의 법안이 의도치 않게 사각지대를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박근혜정부에서 공공기관 등의 청소·경비용역 근로자 등의 고용을 보호하는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며 "특정 직업군만을 대상으로 하는 입법은 쉽지 않겠지만 해당 지침의 대상을 민간으로 확대하고, 근로기준법 등 노동 관련 법의 시행령으로 격상해 그 효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환노위 관계자도 "경비원들에 대한 대량 해고가 발생하는 등 우려가 현실화되다면 환노위에서도 즉시 대책 마련 등에 나설 것"이라며 "현재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재용 이건희 강기준 기자 poong@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