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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없는 우리회사, 노동자 대표는 누구인가요?

등록 :2017-10-1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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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땐
‘근로자 과반수’ 동의 필요
‘회사 맘대로’ 변경 숱해

직원 이익 대변할 ‘근로자대표’
유연근로제 동의 등 권한 있지만
자격·선출·보호 관련 규정 없어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도
권한·선출절차 등 불분명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회사 경영진의 대표는 대표이사입니다. 그렇다면 회사에서 직원 대표, 즉 노동자 대표는 누구일까요? 노동조합이 있는 회사라면 노조위원장이겠지만, 노조가 없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현행 노동관계법에는 많은 노동자 대표제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어느 하나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습니다. ‘직장의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데 꼭 필요한 노동자 대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자, 여러분 모두 동의하시는 거죠?”

지난 5월 서울 금천구의 한 제조업체 사무실에 생산직 노동자 20여명이 모였다. 업체 사장은 녹음기를 켰다. 그는 “경영이 어려워 10만원이던 생산수당을 5만원으로 깎겠다”는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데 동의하느냐고 물었다. 사장은 이 모임을 열기 전까지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자신의 임금을 깎겠다는데 쉬이 동의할 수 있는 직원은 없다. 사장은 노동자 한명 한명에게 녹음기를 들이댔다. “ㄱ씨 동의하시죠?” “ㄷ씨 동의하시죠?” 직원들은 마지못해 “네”라고 답했다. 현장에 있던 이 회사 노동자 ㄱ씨는 “그런 상황에서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직원이 어디 있겠느냐”며 “대답하기 싫어도 그냥 알겠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근로기준법 4조는 “근로조건(이하 노동조건)은 근로자(이하 노동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ㄱ씨 임금이 깎이게 된 과정은 노사가 ‘동등한 지위’도 아니었고, 노동자의 ‘자유의사’에 따른 것도 아니었다. 사용자 지시를 받고 일하며, 사용자에게 받는 월급으로 먹고사는 노동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노동조건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헌법에 노동자의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사용자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0%대에 그쳐 노동자 10명 가운데 9명은 노조를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그렇다면 노조가 없는 회사에서 노동자의 집단적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대표’는 누구일까? 현행 노동관계법에는 노조 이외에도 노동자 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다양한 ‘노동자 대표’ 제도를 두고 있긴 하다. 근로기준법의 ‘노동자 과반수’ 제도, ‘과반수 노동자를 대표하는 자(근로자대표)’의 서면동의,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의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등이다.

그러나 이 제도들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제대로 운영됐다면 ㄱ씨 회사 같은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더라도 사용자의 취업규칙 변경으로 받는 임금은 제자리 수준에 머물게 되거나,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사직을 권고당하는 일, 원래 유급휴일이었던 ‘법정공휴일’이 연차휴가로 바뀌는 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사문화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동의 제도 서울 금천구의 공장에 다니는 생산직 노동자 ㄴ씨는 지난해 말 연차를 내려고 했다가 경리직원에게 “잔여 연차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여름휴가 5일을 쓴 게 전부였던 ㄴ씨는 잔여 연차가 없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따졌다. 경리직원은 “지난번에 서명한 것이 연차휴가를 공휴일로 대체한다는 내용이었다”고 답했다. ㄴ씨는 “몇 달 전에 현장관리자가 직원들한테 서명용지를 돌렸는데, 일이 바빠서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서명했는데 그게 취업규칙 변경 동의를 받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ㄱ씨와 ㄴ씨가 겪은 일은 모두 회사가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임금·근로시간 등 노동조건 전반이 담겨 있는 취업규칙은 회사의 ‘법’과도 같다.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과반수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과반수 의견을 듣도록 하고,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받게 변경할 때는 동의를 구하도록 해 ‘노동조건 대등결정의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는 이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 대해 “사용자 쪽 개입이나 간섭이 배제된 상태에서 사업장 전체 또는 부서별 노동자 간에 의견을 교환해 찬반 의사를 모으는 회의 등 집단적 의사결정 방식을 거쳐야 한다”고 명시한다. 취업규칙 변경 과정에 노동자 의사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다. 노동자 간에 의견을 교환할 기회가 없었던 ㄱ씨, ㄴ씨가 다니는 회사는 이 근로기준법 조항을 위반한 셈이 된다.

2009년 기업 200곳의 취업규칙 현황을 실태조사한 고용노동부 연구용역을 보면, 취업규칙이 있는 기업 190곳 가운데 취업규칙의 불이익한 변경 때 9곳(4.7%)은 아예 동의를 받지 않는다고 응답했고, 167곳(87.8%)은 ‘동의를 받는다’고 응답했다. 이 가운데 법에 따라 ‘과반수 노조나 과반수 노동자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응답한 곳은 69곳(36.3%)에 그쳤다. ‘과반수 여부와 관계없이 노조의 동의를 얻는다’는 곳이 44곳(23.1%), ‘노사협의회의 동의를 얻는다’가 17곳(8.9%)으로 나타나, 절반 이상인 98곳이 형식적인 동의를 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남부지역 노동자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 이규철 조직위원장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노동자 의견을 제대로 들어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회사는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내년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많은 회사들이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수당을 깎는 등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을 줄 가능성이 높은데 법을 무시하는 취업규칙 일방 변경은 반드시 막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권한은 있는데 선출 절차는 없는 ‘근로자대표’ “근로자대표가 누군지 모르시면, 퇴직연금 서명해준 분 있죠? 그분한테 서명해 달라고 하면 돼요.” 지난달 서울의 한 인사·노무 교육업체에서 기업 인사·노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열린 ‘최저임금 인상 대응방안’ 교육에서 강사가 한 말이다. 교육을 받던 인사·노무 담당자가 ‘탄력근로제’ 시행과 관련한 절차를 문의하자 강사는 이렇게 답했다.

이는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근로자대표’ 제도가 얼마나 형식적으로 운용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근로자대표에게 부여된 권한은 선택근로·탄력근로(유연근로제)를 시행할 때 서면동의를 구해야 하는 주체, 무제한 연장근로를 가능하게 해 장시간 노동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근로시간 특례’의 서면동의를 구해야 하는 주체다. 정리해고를 할 때 사전 협의를 해야 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에서 퇴직급여 제도 설정·변경의 동의 주체,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파견근로자 사용에 대한 협의 주체,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노사가 함께 운영해야 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위원이기도 하다.

이처럼 ‘근로자대표’는 기업의 과반수노조를 대신하는 역할을 할 정도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돼 있으나, 법 어디를 찾아봐도 근로자대표 자격을 무엇으로 하고, 어떻게 선출할지, 근로자 대표를 사용자 압력에서 어떻게 보호할지 등에 대한 규정은 어느 곳에도 없다.

강성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자대표’ 제도가 1997년 경제위기 속에서 도입된 제도라는 점을 들어, 취업규칙을 사용자 입맛에 따라 손쉽게 변경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라 주장한다. 강 교수는 “근로자대표가 서면동의할 수 있는 것들은 원래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가능하지만, 근로자대표 제도를 도입해 취업규칙을 손쉽게 변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근로자대표의 자격·선출·권한·보호 등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것 역시 입법자의 실수가 아니라 고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 권한도 선출 절차도 불분명한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노동조합이 없는 기업에서 노동자의 이익 대변을 위해 ‘상시’ 존재하는 기구는 근로자참여법에 따른 ‘노사협의회’다. 노사협의회는 “노사 참여와 협력으로 노사 공동의 이익을 증진해 산업평화와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3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의무로 설치해야 하는데, 사용자위원·근로자위원 각각 3~10명으로 구성해 △성과 배분 △인사·노무관리제도 개선 △인력 배치전환·해고 등 고용조정의 일반원칙 등 14개 항목을 ‘협의’하고 △교육훈련계획 수립 △복지시설 관리 △사내근로복지기금 설치 등을 ‘의결’하도록 하고 있다. 또 사용자에게는 △경영계획 전반과 실적 △분기별 생산계획과 실적 △기업의 경제·재정적 상황에 대해 보고할 의무도 부여한다.

이 노사협의회의 문제점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사협의회가 근로조건을 결정할 권한이 있는지, 결정할 권한이 있다면 불이익이 생기도록 변경하는 것도 가능한 것인지, 노사협의회가 한 의결권한 효력이 어디까지인지가 불분명하다”고 말한다. 노사 동수로 구성해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한 정족수 규정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만약 노사 위원이 3명씩일 경우, 근로자위원 가운데 1명만 사용자 쪽 의견에 찬성해도 의결이 가능하다. 사용자위원들은 한목소리일 수밖에 없는데, 노동자들은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어, 결과적으로는 사용자에게 유리한 구조다. 이 때문에 2015년 고용노동부 연구용역에서는 노사협의회의 의결기준을 전체 위원의 5분의 3으로 높여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813842.html?_fr=mt2#csidx99611d6a9cba276858c3d8897e2d2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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