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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의 외환위기, 2003년의 카드사태에 이어 또다른 경제위기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가계부채의 위기가 그것이다. 그동안 잠재해 있던 가계부채 위기는 지난주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물 위로 떠올랐다. 앞으로 2년 동안 이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고 관리하느냐가 이명박 정부의 경제성적표를 좌우할 것이다.

지금의 경제 상황은 가계부채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부채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급증한 가운데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서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 돼버렸다. 금리 인상에 직격탄을 맞게 되는 변동금리부 주택담보대출은 가계부채 위기의 뇌관이다. 전격적으로 이뤄진 지난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은 이 민감한 뇌관을 건드렸다. 시중은행들은 당장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기준금리가 금융위기 이전의 연 5% 수준까지 오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현재 연 4~6% 수준인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앞으로 2~3년 안에 연 8~10%까지 오를 수 있다. 이자 부담이 2배로 늘어난다면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하는 가계가 속출할 것이다.

가계부채 위기는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의 실패가 불러온 필연적인 결과다.

2008년 9월 세계 금융위기가 본격화하자 한국은행은 연 5.25%였던 기준금리를 2%까지 낮췄다.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조처였다. 문제는 이런 저금리를 너무 오래 지속했다는 점이다.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오스트레일리아는 2009년 10월부터 금리 인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고성장에 집착한 우리 정부는 2010년 7월에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장기간의 저금리는 가계가 이자 부담 없이 대출을 늘리는 데 좋은 토양이 됐다. 지난해 8·29 부동산대책에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해 준 것도 대출 확대를 불러왔다. 가계부채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커녕 정부가 앞장서 부채를 늘리도록 부추긴 셈이다.

부채가 많아도 금리가 낮으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 국면에 들어선 상황이다. 경제가 살아나면서 금융위기 당시 대거 풀린 돈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고,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대에 육박하는 등 국제 원자재값이 급등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가팔라질 것이다. 더욱이 정부는 성장을 우선시하면서 ‘출구전략’을 계속 미루고, 수출 확대를 위한 고환율 정책을 유지함으로써 물가 불안을 가중시켰다.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수 없는 여건을 정부 스스로 조성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가계가 잔뜩 대출을 늘리도록 해놓고 성장 위주 정책으로 물가가 불안해지자 금리 인상에 나서 부채위기를 자초하는 자승자박식 경제정책을 펴왔다. 정부가 부채위기를 우려해 금리 인상을 자제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하면 인플레이션이란 더 무서운 호랑이와 맞닥뜨려야 한다. 정부는 호랑이 대신 경제적 약자인 가계를 희생양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가계부채 위기는 이제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미 뇌관에 불이 댕겨졌다. 금리 인상에 맞춰 부채위기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비상대책 마련에 바로 착수해야 한다. 가계파산이 시작된 뒤에는 이미 늦다. 가계대출 확대를 억제하는 것은 물론 기존 대출에 대한 구조조정도 서둘러야 한다. 변동금리부 대출을 고정금리 대출로 전환하고, 부채의 만기를 늘리는 등 다양한 방안이 있을 수 있다.

가계부채 구조조정은 연착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03년의 카드사태 때도 당시 미숙한 경제팀이 너무 급하게 돈줄을 죄다가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이 있었다.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부채위기가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의 실패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임기 말까지 적당히 덮고 가는 것이다. 이는 한국 경제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무책임한 행태다. 최소한 그러지는 않으리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