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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조합원을 위해 조직된
농협중앙회의 자회사가 주도하여
조합원에게 팔 비료값을 담합했다니…

얼마 전 국내 가전제품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삼성과 엘지가 짬짜미(담합)하여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정하고 부당한 이익을 취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대재벌 회사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하고 화가 나면서도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업이 아직 장사치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실망감이 컸다. 우리나라 기업도, 돈 버는 것이 아니라 ‘기술혁신을 통해 소비자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비전으로 삼고, 돈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들어온다고 생각하는 세계적 기업들을 본받아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뒤, 이번에는 화학비료업체가 가격을 담합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뉴스에 따르면 ‘이 담합이 1995년부터 15년간이나 지속되었고, 공정위가 가격 담합을 조사하자 2011년 공급가격이 전년보다 21%나 낮아져 농가 부담액이 1022억원 감소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뉴스는 실망이 아니라 충격이었다. 대재벌사가 짬짜미를 하는 마당에 화학비료업체가 담합했다고 충격까지 받을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충격을 받은 것은, 담합의 최대 주체인 남해화학이 농협중앙회의 자회사이고, 담합의 대상이 바로 농협중앙회였기 때문이다. 농민 조합원을 위해 조직된 농협중앙회의 자회사가 주도하여 다른 업체들과 짜고 조합원에게 팔 비료 가격을 담합했다니, 도대체 그 회사 임직원은 그 회사가 왜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바로 자신들의 주인인 농협중앙회가 발주한 물량에 대해서 그 긴 기간 짬짜미를 했다는 것인데, 중앙회는 어떻게 깜깜이었을까?

이 어이없는 사건을 보며 농협중앙회의 사업구조 개편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공연한 것이 아님이 분명해졌고, 따라서 이제 모두가 이 문제를 좀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부터 농협중앙회 출자로 주식회사 체제인 경제지주사가 설립되고, 이 지주사 밑에 문제의 남해화학을 포함한 모든 경제사업체가 자회사로 소속하게 된다. 경제지주사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막강한 자금력을 가지고 출발하는데다, 사업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력이 크므로 매우 적극적으로 사업을 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 경제지주사와 그 산하의 자회사들이 농민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 일하게 될까? 기업의 속성상 남해화학에서 보듯이 조합원보다 임직원과 회사의 이익을 위해 사업을 벌이고 업무를 처리하지는 않을까? 농협중앙회가 지배권을 가지고 감독을 한다지만, 남해화학이 15년간이나 바로 농협중앙회를 상대로 담합했는데도 그 긴 꼬리를 보지 못했는데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이 분리되고 경제지주가 충분한 자본금을 확보하면 조합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환상을 깨야 한다. 농협중앙회와 경제지주사, 그 산하 자회사의 실질적 지배권이 조합원에게 있고, 사업의 이득이 온전히 조합원에게 귀속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으면 그들의 행태는 결국 다른 대형 유통업체와 다를 것이 없어질 위험이 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앞으로 농협중앙회와 경제지주사는 경제사업 활성화란 명제 아래 자회사를 만들고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조합과 조합원이 지배권을 갖고 사업의 이득이 모두 조합원에게 귀속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따라서 독립적 수익사업은 최소화하고 자본·기술·경영 측면에서 조합 혹은 조합공동사업에 참여하여 함께 사업을 끌고 가는 역할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물론 이 길이 표면적으로는 비능률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결국은 협동조합을 다른 기업과 차별화하는 방법이고, 협동조합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을 달성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정환 GS&J 인스티튜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