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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계약직 월급이 더 높아야 공평사회 / 정재승

등록 : 2012.01.31 16:37 수정 : 2012.01.31 19:27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정규직과 유사한 수준의 일을 하는
계약직에게는 동일한 월급은 물론
퇴직금 해당 금액을 추가 지원하자

일본의 미래예측보고서에 따르면, 미래에는 한 직장에 평생 머물지 않고 여러 일자리를 돌아다니는 ‘노마드식 일자리’가 인기를 끌 전망이라고 한다. 언제든 취미와 선호에 따라 여가시간을 갖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의 생활양식에도 잘 맞을 거란다. 컴퓨터와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이 이룬 사회적 변화이리라.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여전히 우수한 젊은이들은 어떡해서든 대기업에 취직해 쫓겨나기 전까지 붙어 있는 걸 ‘최선의 생존전략’이라 믿는다. 근사한 미래형 일자리가 왜 우리나라에선 아직 보편화되지 못하고 특정 직업군에서만 볼 수 있는 걸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계약직 일자리에 정규직과 동등한 대우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계약직 일자리가 넘쳐나면, 나이에 따른 차별이나 한번 일자리를 잃으면 재기가 불가능한 한국 노동환경이 바뀐다면, 계약직이 더욱 당당해질 것이다.

계약직 중에는 아직 일할 능력이 부족해 일을 배우면서 업무능력을 검증받는 자리가 있는가 하면, 실제로 하는 일은 정규직과 유사하나 인력을 충원할 상황이 못 되거나 업무의 지속성이 불투명해서 계약직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인턴 수준의 인건비를 지급하며 2년 이내 업무능력을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다.

하지만 후자는 현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법’으로 정한바 2년 이상 일하는 경우 정규직으로 강제 전환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실제로 기업 입장에서는 그럴 수 없는 경우도 많고, 그것이 더 비효율적인 경우들도 있다. 그러다보니 1년11개월마다 해고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정규직과 유사한 수준의 일을 하는, 즉 법이 정한 동일업무를 수행하는 계약직 직원들에게는 동일한 월급은 물론 퇴직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추가로 지원해 사실상 계약직의 월급이 더 높도록 지급하자고 제안한다. 좀더 명확하게는, 동일업무를 수행하는 계약직 직원에게는 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의 대우와 혜택을 제공하자는 거다.

그러면 기업은 인건비 측면에서 계약직 직원을 장기간 채용하느니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된다. 그럼에도 계약직으로 유지하는 게 낫다고 판단되면 고액의 인건비를 들이더라도 양질의 계약직 인력을 장기간 활용할 수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도 이제 자유로운 계약직과 안정적인 정규직 사이에서의 고민은 삶의 철학과 스타일의 문제이고, 더이상 계약직을 빨리 정규직을 얻어 벗어나야 할 지위로 간주하지 않게 된다.

계약직이라도 원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시장원리에 따라 낮은 임금으로 채용할 수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그러나 그들은 계약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을 원하는 것이며, 정규직을 위한 리그와 다른 ‘마이너리그’가 아니다. 게다가 길게 보면, 이 제도가 기업에도 훨씬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해줄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이룰 수 있는 공정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는 자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자유에서 나온다.


‘계약직에게 월급을 더 주는 공평한 사회’를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시장의 원리가 아니다. 슬프게도, 그것은 계약직을 대하는 정규직들의 우월감이다. 계약직을 정규직과 동등한 지위로 올리는 데 정규직이 흔쾌히 동의할 리 없다. 정규직은 자신들이 그리고 그들의 다음 세대가 언제까지나 정규직일 거라 믿는다. 우월한 지위를 공고히 할 때보다 포기할 때 비로소 행복한 지위를 오랫동안 얻을 수 있다는 역설을 아직 못 배워서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