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농협노동자, 농민들 사이에서 농협법 재개정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3월 국회에서 농협법을 개정하면서 정부는 6조원 규모를 지원하기로 국회와 합의했지만 9월 21일 발표된 정부지원안에서는 2조원을 삭감했다. 이에 민주당 최인기 의원은 재원마련 준비를 위해 농협중앙회 구조개편 관련 개정규정의 시행시기를 2017년 1월로 연기하자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금융노조와 전농 등도 개정 농협법 시행연기와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농협법 재개정의 필요성은 단순히 정부 지원규모의 축소 때문이 아니다. 개정농협법과 같은 지주회사 방식의 구조개편이 농협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농협을 농민의 손에서 자본의 손으로 넘겨줄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 근본적 문제다.

신경분리와 '옥상옥' 지주회사 시스템

농민들의 시대적 요구인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한 농협중앙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에 대해 농민단체들은 조속히, 중앙회는 점차적으로 하자는 의견이었지만 연합회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그런데도 지주회사 방식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분리로 농협법이 개정될 수 있었던 것은 농협중앙회가 교묘하게 유도해왔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2009년 3월에 공개된 ‘맥킨지 용역보고서’다. 금융위기 속에서 농협경제연구소가 2008년 10월부터 4개월간 맥킨지컨설팅, 김앤장 법률사무소, 삼일회계법인 등과 공동으로 수행한 연구용역 결과인 “농협의 지속 성장을 위한 경영전략”, 일명 ‘맥킨지 용역보고서’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농협경제연구소장은 기획재정부 출신의 김석동(현재 금융위원장)이 맡고 있었다. 보고서는 농협중앙회가 경제·신용·교육지원 부문을 한 조직에 갖고 있어 비효율성이 크므로 2단계에 걸친 구조조정을 통해 2011년까지 지주회사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했다. 금융지주회사를 분리 설립하면서 중앙회 자본금의 대부분인 14조5000억원을 금융지주회사에 투자하는 반면, 경제사업에는 2조7000억원의 자본금만 배분하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 보고서는 당시 세계경제위기 속에서 농협 신용사업의 수익이 크게 감소하는 등 신용사업 위기를 타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이후 제출된 2009년 3월의 농림수산식품부 협동조합개혁위원회의 안과 2009년 10월의 농협중앙회 안은 멕킨지 용역보고서의 내용과 대동소이한 것이었고 이런 안들을 바탕으로 농협법이 개정된 것이다.

지주회사 방식의 신경분리를 내용으로 하는 현재의 농협법 개정은 농민을 위한 농협개혁이 아니다. 출자와 통제구조는 농민조합원 → 회원조합 → 중앙회 → 경제지주회사 또는 신용지주회사 → 자회사의 구조다. 중앙회 자체가 지주회사이다. 경제지주회사는 중앙회의 자회사이면서 산하 자회사의 지주회사가 된다. 그 결과 중앙회에는 지주회사 노릇을 하는데 필요한 신용사업 담당 전무와 경제사업 담당 전무가 배치된다. 전형적인 옥상옥이다. 지주회사의 운영원리는 투자 자본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회원조합이 중앙회를 통제하지 못하는 체제 하에서 농협중앙회는 농협 임직원과 정부 관료의 의사에 맡겨지게 된다. 이것은 재벌 총수가 지주회사를 통하여 다수 계열사를 통제하는 것과 같은 구조다.

농민의 손에서 자본의 손으로 구조 개악

   
장상환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개정 농협법은 중앙회 신용사업이 독자적인 금융그룹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주회사가 되어 외부 자본을 유입한다면 농협마저 외국의 투기자본에 의해 잠식될 가능성도 있다. 회원조합 상호금융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상호금융연합회의 분리가 필요한데 개정 농협법은 그 시기를 명시하지 않았다. 또 중앙회 경제사업을 지주회사로 개편하는 것은 단위조합의 경제 연합사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앙회 임직원의 이익을 위한 성격이 강하고 거래과정에서 일선조합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수 있다.

현재의 농협중앙회를 농협연합회로 개편해 지도·감사·교육·농정활동 등 비사업적 기능만 수행토록 하고, 신용사업은 신용사업연합회로 분리시키며, 기존 각 중앙회 경제사업은 회원조합들의 경제사업연합회 체제로 전환해 수행해야 한다. 또 농협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원활하게 분리하기 위해서는 4조원으로는 부족하다. 당초 농협이 경제사업 부문에 배분을 요구한 6조원 수준의 충분한 지원이 있을 때까지 구조개편을 연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