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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삼성’은 가능할까?

2011.12.30 11:25

광농민노 조회 수:12545

‘착한 삼성’은 가능할까?
[토론회] 독점재벌 사회화 어떻게-연기금 사회주의의 가능성과 한계
오준호 메일보내기

△ 12월 20일, 노나메기 학술마당이 주관한 ‘희망의 정치노선’ 월례 토론회 <독점재벌기업의 사회화, 어떻게-연기금 사회주의의 가능성과 한계>가 열렸다. ⓒ 오준호
만약 다음의 세 뭉텅이 돈 중에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무엇을 골라야 할까?

① 대한민국 국가예산  ② 삼성 총자산  ③ 국민연기금

액수로만 보면 답은 3번. 2011년의 국가 예산은 306조였다. 삼성의 현재 총자산은 317조다. 국민연기금은? 올해 8월에 338조7천억 원을 넘어섰다.
 
이 막대한 기금을 활용해 독점재벌기업을 사회화하자는 주장이 있다. 연기금으로 기업의 최대 주주가 되어, 일차적으로 총수 일가의 전횡을 막고 이차적으로 기업을 사회 구성원 모두의 소유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연기금 사회주의론’이다. 영국의 블랙번 교수나 한국의 곽노완 교수(서울시립대) 등 진보적 학자들이 제기해왔다.

흥미롭게도 올해 4월 청와대와 전경련 사이에도 연기금 사회주의 논쟁이 있었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이 삼성ㆍ포스코ㆍKT 등 대기업을 거론하며 “거대권력이 된 대기업에 공적 연기금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고, 이에 전경련이 “연기금 사회주의를 하겠다는 것이냐”며 극력 반발했다.

여기에 두 가지 시사점이 있다. 하나는 ‘비지니스 프렌들리’한 이명박 정부조차도 견제의 필요를 느낄 만큼 재벌의 독점 권력이 경제 생태계에 해악을 끼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재벌들이 핏대를 높일 정도로 연기금을 통한 개입은 현실적인 방법이란 것이다.     
 
12월 20일, 연기금 사회주의를 둘러싼 진보진영의 입장을 논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노나메기 학술마당이 주관한 ‘희망의 정치노선’ 월례 토론회 <독점재벌기업의 사회화, 어떻게-연기금 사회주의의 가능성과 한계>가 그것이었다.

3백조 연기금 이용해 재벌을 사회화하자

발표자인 곽노완 교수는 그간 진보진영이 재벌 해체, 재벌 사회화 등의 용어를 모호하게 써왔다고 지적했다. 재벌 해체가 총수 일가와 기업을 분리하자는 것인지, 재벌을 계열사로 쪼개자는 것인지, 기업을 아예 없애자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으며, 마찬가지로 사회화란 용어도 그 주체가 기업의 노동자인지, 전체 노동자계급인지, 사회 구성원 전체인지 불분명했다는 것이다.

△ 이날 토론회는 강남훈 교수(오른쪽)의 사회와 곽노완 교수(왼쪽) 발표를 중심으로 여섯 명의 토론자가 참석했다. ⓒ 오준호
곽 교수의 핵심 주장은 재벌기업을 사회화하자는 것이다. “300조 이상 되는 연기금으로 삼성, 현대 같은 재벌기업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재벌기업을 사회적 공유기업으로 바꿀 수 있고, 기업의 배당금은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할 수 있다.”
 
여기에 재벌들은 당연히 반발하겠지만, 곽 교수에 의하면 그 반발은 어불성설이다. 우선 총수 일가가 소유한 지분이 전체 기업의 자산 규모에 비춰 극히 적다. 이건희 일가는 약 10조원의 재산으로 자산이 300조가 넘는 삼성을 지배하며, 정몽구 일가는 5조원의 자기 지분으로 160조원이 넘는 현대자동차를 지배한다. 그러나 여기엔 계열사끼리 주식을 사주는 순환 지배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총수가 계열사의 재산을 쌈짓돈처럼 쓰는 것이다. 삼성생명의 총자산 150조원 가운데 부채가 135조원이다. 그 돈은 보험가입자가 낸 보험료다. 이건희 일가는 그 돈을 마치 자기 것처럼 유용한다. 그들은 삼성생명의 돈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사서 이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한다. 총수 일가는 지분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불평등한 권력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재벌들은 노동자·서민들을 수탈하여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곽 교수는 외평채(외환평가기금채권)를 들었다. 외평채는 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정부가 외평채(외환평가채권)로 한국에 들어오는 달러를 매집하고, 그 달러로 미국 국공채에 투자해서 이자를 받는다. 그런데 최근 3년간 미국 국공채 이자가 떨어져 손실액이 8조원이다. 이는 현 세대와 다음 세대가 져야 할 채무다. 또 정부가 달러를 사들이면 달러 가치가 오르게 되어, 2008년 달러/936원에서 어제(12.19) 달러/1168원이었다. 수출기업을 위해 서민들은 고물가에 시달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면 서민들은  매년 90조원 정도 생활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독점기업에 의한 간접적 수탈이다.”

곽 교수는 연기금으로 당장이라도 재벌기업 사회화에 나설 수 있다고 한다. 연기금은 현대모비스에서 6% 지분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 약 7조원 정도만 더 투자하면 정몽구 회장의 개인 지분을 능가하게 된다. 그러면 현대모비스가 현대자동차를 지배하는 지분 구조에 따라 연기금이 현대자동차를 지배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더 이상 비정규직 탄압과 총수 비자금 창고라는 의혹을 받는 회사가 아니라,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수익을 사회 환원하는 ‘착한 기업’으로 거듭날지 모른다.

이 과정에서 개미 주주들의 반발은 없을까? 대주주든 소액주주든 이익을 노리고 투자하는 건 마찬가지다. 재벌기업의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그 기업의 주주인 사람들은 주가가 떨어질 게 분명한 이런 사회화를 환영할까? 

“우리나라 소주주들이 약 450만명이다. 이들을 빚을 내어 백만원 천만원씩 투자하고 있다. 만약 사회화 과정에서 이들의 주식을 몰수한다면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반발할 것이다. 소주주들의 지분은 적절한 가격으로 매입하면서, 기업의 이익은 배당금 대신 기본소득으로 지급할 거라고 설득하면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곽 교수는 이러한 지지에 바탕하여 헌법에 사회화를 못 박으면 보수 정권이 들어서도 역진적 정책을 쓰지 못할 거라고 한다. 곽 교수는 사회화를 밀어 붙여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극복하자고 하는데, 그 하나의 아이디어가 ‘사회축적기금’이다. 자본주의적 주식회사를 사회적 공유기업으로 만든 후, 그 기업 이익과 기존의 연기금·은행 예금을 모두 모아 사회축적기금으로 통합하고, 이를 사회적 투자와 기본소득 지급에 사용하는 것이다.

△ 토론자인 사회진보연대 이상훈, 참여연대 박원석, 사회당 금민(왼쪽부터). ⓒ 오준호
△ 토론자인 진보신당 장석준, 사노위 장혜경, 다함께 장호종.(오른쪽부터). 가장 왼쪽은 사회자인 강남훈 교수. ⓒ 오준호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연기금 사회주의론은 확실히 논리적 설득력과 구체성이 있다. 하지만 현실에 과연 적용할 수 있을까. 토론회에 참가한 여러 패널들은 이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진보신당 장석준 : 대안을 검토할 때 중요한 것은 그 대안을 통해 운동주체가 형성될 수 있는가이다. 그런데 연기금 가입자가 과연 운동주체가 될 수 있는가. 내가 스웨덴 임금노동자기금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비록 한계가 있지만 노동자들이 운동주체로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결국 기업의 노동자 자주경영 아니겠는가.

사노위 장혜경 : 사회축적기금과 같은 사회화된 금융이 무엇인지 상이 잘 안 잡힌다. 그 운영 주체는 누구이고 그 기금을 이용한 산업정책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그 점이 비어 있으면 시장경제와 계획경제의 한계를 돌파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연기금을 통한 사회화란 자본주의 체제의 주식투자를 활용하자는 것인데, 그것이 과연 현실적인 대안이겠는가. 그 과정에 필요한 여러 단계마다 지배세력의 저항을 받게 될 것이다.

다함께 장호중 : 연기금 사회주의론의 가장 큰 약점은 권력문제를 빼놓고 있는 것이다. 스웨덴에서 2차 대전 후에 기업 국유화를 추진하다가 반발에 부딪쳐 실패하고 결국 국유화대신 조세 정책으로 복지를 했다. 70년대 좀 더 급진적인 방안으로 임금노동자기금 같은 것이 나왔지만 또 실패했다. 결국 권력 문제를 우회할 수 없고, 아래로부터 동력이 안 나오면 어떤 대안도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사회당 금민 : 세계 경제의 침체기 후 앞으로 한동안의 과제는 당장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보다는 자본주의 안에서의 사회화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격렬한 계급투쟁을 동반한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하에서 사회화를 어떻게 할 것인지 정책 대안이 나와야 이 계급투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 연기금 사회주의 모두 나름의 전술적 가치를 가진다. 연기금 운영위원회 운영에 관해선 계층연합적 구조를 만들면 된다. 그것은 청년층, 비정규직 등 각자에게 대표를 주는 일종의 소비에트, 계층별 평의회가 될 것이다.

참여연대 박원석 : 한국사회 최대 문제인 재벌문제를 환기하고 대안을 상상한다는 의미는 중요하다. 그러나 너무 큰 이야기보다는 재벌을 규제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필요하다. 지금 연기금 지분을 가지고도 기업의 책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다만 현재 연기금이 지속가능하다는 전제하에서 논의가 이뤄지는 듯한데, 이 기금은 장래 고갈될 것을 예상해야 한다. 차라리 기금을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쓰자는 주장도 있다.

사회진보연대 이상훈 : 연기금 사회주의란 말 자체가 모순적이다. 연기금은 금융자본주의의 최첨단이고 사회주의란 그걸 넘어서는 대안인데, 이게 자본주의 안에서 현실성이 없다. 주주의 권익과 임금은 대립할 수밖에 없다. 주식이 오르면 임금은 떨어진다. 노동자가 주식을 사서 자본을 통제한다는 건 모순이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지배세력이 반발할 것이다. 결국 사회화에서 중요한 것은 법적 소유권이 아니라 노동자 통제를 실현하는 것인데, 이에 대한 고민 없이 제도적 방법에만 치중하다보면 도리어 노동자계급이 해체된다.

곽 교수는 연기금 사회주의를 ‘하나의 전술이자 가능성’으로 보아 달라고 주문했다. 변혁적 정세는 어떻게 올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대비하자는 것이다.

다수 토론자가 제기했듯 이 방식은 아래로부터 저항 주체를 만들어낼 ‘운동적 계획’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껏 진보진영에서 제기한 ‘재벌 해체’ 운동에 일언반구하지 않던 재벌들이 연기금을 통해 경영에 개입하겠다는 여당 인사의 말에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왜일까.

그 방안이 가진 현실적 잠재력 때문이다. 이미 국민연기금이 소유한 주식은 상장사 시가총액의 4.6% 이상이고, 5% 이상 지분을 가진 기업도 139개나 된다. (문화일보 4월 27일자) 재벌들이 경영권 위협을 느낄만하다. 여기서 조금만 더 밀어 붙이면 완전한 사회화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총수 일가의 탐욕과 무능은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 그리고 금민의 말처럼 이처럼 목표가 손에 잡히는 정책 대안이 사회운동을 더 촉발시킬 거라는 기대도 가능하다.

그간 방만한 운영과 고갈 위험으로 ‘불신’ 연금으로 추락한 국민연기금. 이 기금이 진보진영에 의해 경제 민주화와 재벌 사회화에 꼭 필요한 무기로 거듭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준호 / <반란의 세계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