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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년 전이다. 한 석간신문에 지면을 얻어 부산 지역의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돌아다녔던 때가 있었다. 반년 가량 그러던 중 평소 궁금했던 김진숙 씨를 인터뷰를 핑계로 만나볼 수가 있었다. 50분가량 대화를 나눴던 것이 내가 그를 직접 만났던 처음이자 마지막 시간이 된다.

그의 책 <소금꽃나무>(후마니타스 펴냄)가 출간된 지 두 달도 되지 않았던 때였다. 나는 대단한 호감을 가지고 그를 만났다. 책을 읽고 놀랐기 때문이었다. 소문은 들었지만, '과연 김진숙이로구나!'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또는 노동운동가로 내 앞에 앉아 있었지만, 나는 글쓰기 판의 선배이거나 동료로 그를 보고자 했다. 그만큼 그의 글은 훌륭했다. 결국 지면에 이렇게 낯 뜨거운 구구절절을 쓰고 말았다.

"(책 속에서) 자신의 가족사를 다룬 '돌아온 아이'와 '부고 없는 죽음'이란 글은, 하나는 주간 <교육희망>에 실었던 칼럼이고 또 하나는 책을 내며 처음 쓴 것인데, 원고지 수백 매로 풀어도 될 묵직한 사연을 10매 내외의 분량으로 여유 있게 담아내는 것이 내가 보기에 그것은 '재능'도 '솜씨'도 아니었다.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은 충격이 왔는데, 현실의 무시무시한 사연을 약간 능청스럽고도 또 진실된 어조로 풀어내는 것에서 재능과 솜씨를 넘어서는 그의 숨 막히는 정신력을 보았다. 1994~95년에 현장 노동자를 찾아가 인터뷰한 것을 잡지 <연대와 실천>에 연재했다는 글은 눈앞의 사람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능력이 여느 1급 소설가 못지않았다. 왜 이 사람이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 문학 판에서 맥이 끊긴 장편 노동소설을 쓰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그와 나눈 이런 문답도 잊지 못한다.

- 사람이란 존재를 신뢰하시죠?
"그럼요, 그거 없이 이거 하겠습니까."


- 왜 신뢰하세요?
"한진중공업에서 나이 많은 분들하고 같이 일하면서 저를 참 감동하게 하는 아저씨들이 많았어요. 제가 한번 철판에 깔려 두 다리가 다 부러졌더랬어요.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환자 밥도 안 나오는 작은 병원이었거든요. 중국집에 만날 자장면을 시켜먹었어요. 아저씨들이 저녁에 문병을 와서 그걸 보시고는 집에 가서 자기 부인들한테 얘기를 한 거예요. 부인들은 저를 모르잖아요. 그런데 전부 주전자에 죽을 끓여와 가지고……그걸 교대로 계속 해 왔더랬어요. 그때 저는 죽 하나는 종류 별로 다 먹어봤더랬습니다."


한진중공업에 다니며, 그리고 해고된 후 노동운동가로 나선 후에 그에게 이 같은 감동적인 사연이 천 가지는 넘을 성싶었다. 나는 인터뷰 기사를 이렇게 마무리했었다.

"노동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사람의 아름다움'에 반한 인생일 거라는 나의 오랜 짐작은 별로 틀리지 않았다. 일방적인 바람이지만, 사람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구현되는 '작가 김진숙'의 장편 소설을 보게 될 날을 나는 오래도록 기다릴 것이다. 이 땅의 수많은 노동자들의 영혼을 구원한 <전태일 평전>의 뒤를 그 소설이 잇지 않을까. 이것이 비단 나만의 소망은 아니리라."

ⓒ손문상
그 김진숙 씨가 알다시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1인 농성을 하고 있는 것이 170일이 훌쩍 넘었다. 벌써 반년도 더 됐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그의 투쟁에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자본의 해외 이전, 기업 구조 조정에 따른 정리 해고, 사측의 단체 협약 위반 등 영도조선소를 둘러싸고 시빗거리가 되고 있는 것들이 너무 상투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거의 거의 일상이 되다시피 한 해묵은 '자본의 몸 떨기'이고, 대다수 국민도 기업의 그런 행태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지 오래되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이번 '한진중공업 사태'의 전개에는 기존과 달리 신선했던 움직임이 있긴 했었다. 그것은 물론 '1차 희망 버스'의 운집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사회운동가와 시민들이 자기 돈을 내어 버스를 대절하여 영도조선소로 모여들었던 것이다. 그게 6월 10일경이었다.

그것을 보고도 나는 냉담하기만 했다. 그날의 열기가 '더 이상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은 안 된다'는 국민적 각성의 표현이었을까.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날의 희망 버스 운집은 85호 크레인에서 농성하고 있는 이가 다른 누구도 아닌 김진숙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만큼 글쟁이면서도 노동운동가인 김진숙이 눈물 쏙 빠지도록 하는 감동적인 말과 글로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왔고, 또 사람들이 그의 삶과 투쟁, 그리고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그의 말과 글을 알게 모르게 많이 사랑해왔던 때문이었다. 근래의 한국 노동운동에서 김진숙 같은 유명인사가 저렇게 치열하게 또 상징적인 투쟁을 벌였던 사례를 나는 알지 못한다. '희망 버스' 정도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1차 희망 버스' 이후에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사태를 이렇게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김진숙 한 사람은 아무런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그 무서운 정신력과 놀라자빠질 정도의 글 솜씨 말솜씨로 김진숙 개인은 앞으로도 먹고 사는 문제를 스스로 능히 해결해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의 투쟁으로 더 유명해져버렸으니 더 큰 책임이 그에게 주어질 것이고, 그것을 그는 달가워할 것이었다. 그리고 여론이 좀 일어났으니,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단체장과 지역 국회의원 등이 나서서 노사 간 타협을 이끌어내고 법적 소송은 서로 취하하고 김진숙은 상징적 처벌만 받게 되리라고 보았다.

그런데 알다시피 한진중공업 사태는 전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며칠 새 더욱 급박해졌다.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영도지회장이 '파업 철회'를 선언한 것이 사흘 전의 일이고, 그리고 사측은 크레인으로 오르는 전기를 끊어버렸고, 크레인 중간에서 농성하는 노동자의 수를 12명으로 줄이면 전기 공급을 재개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조치를 취했는데 전기는 공급되지 않고 있고, 외부의 식사 투입도 통제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김진숙과 노동자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권 침해 구제 신청을 하였고, 죽을 포함한 식사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지만 전기 공급은 안전상의 이유로 재개하지 않고 있으며, '인터넷이 되지 않는' 일반 전화기를 김진숙에게 주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자, 앞으로 사태는 어떻게 되어갈까. 2차 희망 버스가 운집하는 날은 다음 주 주말 7월 9일 경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객관적인 상황은 암담하기만 하다.

어제 <한겨레>가 조합원들과 협의 없이 '무조건 업무 복귀'를 선언한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최우영(51) 사무장과 인터뷰를 하였는데, '비해고자 600명도 고려해야 했다', '국회 청문회에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출석해도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봤다. 수모를 당한 조 회장이 더는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더 마구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차 희망 버스에 대해서는 '마음으로는 고맙다. 그렇지만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날은 힘이 되겠지만, 1차 희망 버스 때처럼 지나가면 부담을 남길 수 있다. 대세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는 결론지어 말했다. '경찰이 들어오면 농성 노동자 모두 연행돼 형사 처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러면 노동조합도 와해될 수 있다. 막말로 지도부가 끝까지 버텨서 전원 연행되면 간단하다. 그러면 남는 것이 뭐가 있는가? 투쟁 역량을 보호해서 길게 가야 한다고 봤다'. 인터뷰 기사를 본 솔직한 내 심정은 이렇다. 최우영 사무장의 말들이 정세에 보는 판단이 틀렸다고 누가 감히 비판할 수 있으랴!

그런데 바로 몇 시간 뒤였다. 전기가 끊겨 언론과의 인터뷰가 '마지막'일지 모른다고 하며 김진숙 씨와 한 '마지막 인터뷰'가 <프레시안>에 실렸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김진숙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강제 행정 집행) 과정들을 보면서 대한민국에서 재벌의 힘이 얼마나 무소불위인지 (새삼 느꼈다). 법도 재벌 아래, 국회도 재벌 아래다. 국회 청문회까지 잡힌 상황에서 이렇게 무리하게 불법으로 조합원 끌어내고, 노동조합 집행부가 거기에 동조하고, 조합원들을 분열시키고 서로 상처를 입히는 광경을 보면서 지난 30년 동안 느껴온 것을 어제 두어 시간 만에 뼈저리게 느꼈다. 국회도 무시하고 공권력의 이름으로 노동자를 짓밟는 걸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나. 사장 쫓아내면 해결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정리 해고가 철회될 때까지 절대 안 내려갈 거다."

그리고 그는 '버림받았다'고 하고 있었다.

"정리 해고 철회를 위해 지금까지 6개월 넘게 투쟁했다. 나는 174일째 크레인에 올라와 있는데, 행정 대집행으로 조합원들이 끌려 나가는 것보다 집행부가 조합원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하는 게 더 참담하다. 회사에 버림받고 노동조합에 버림받아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이 힘든 싸움에도 그런 얘기 안 하려고 하는데. 어제 끌려 나간 조합원들이 크레인이 보이는 맞은편에서 지금 비 맞고 있다. 8차선 도로 건너편에서."

무엇보다 내게 충격적인 것은 다음의 대목에서였다.

"6월 10일 희망 버스가 올 때 (갑자기) 용역을 투입해서 조합원들을 끌어내리는 장면을 본 이후로 지금까지 잠을 한 시간도 못 잤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 위에서 그 광경을 다 봤으니 오죽하겠나."

충격적인 그의 말을 보고 내 생활의 감각은 한순간에 다 헝클어졌다. 김진숙 씨의 상태가 너무 위태로워 걱정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6월 10일이 언제였는가. 그날로부터 벌써 보름 넘게 지났지 않는가. 모르긴 해도 그 보름여 동안에 85호 크레인 아래의 상황이 24시간 내내 쉼 없이 용역의 농성장 침탈을 막아내는 식의 한결같은 비상사태의 지속은 아니었을 것이다. 전쟁 중에도 병사들의 잠은 재운다. 그러니 김진숙은 크레인 아래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어떤 돌발적 상황 때문에 보름 넘게 잠을 안 자는 것이 아니다. 6월 10일 이후 그는 통 잠을 못 자는 상태인 것이다. 자려고 해도 잠이 안 오는 상태인 것이다. 상황을 다시 잘 복기해보자. 작년의 몇 차례 단식과 먹을거리와 휴식이 불충분한 농성 생활로 그는 체력이 이미 바닥이 났던 상태였다. 그런 중에 6월 10일경 농성장 침탈이 있었다!

생각해본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거의 언제나 서럽다. 언론 보도도 삭막하기 이를 데 없이 간단간단 나오고, 아니 한줄 보도조차 되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고, 그 속속들이 사연들은 결코 상투적이지 않은데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뻔한 것으로 만들어 내돌리기 일쑤다. '희망 버스'라는 이름의 연대 투쟁. 아마 김진숙에게도 지난 몇 십 년 노동운동의 날들에 희망 버스가 몰려온 때와 같은 연대의 성공은 없었을 것 같다.

그럴 때에 인간적으로 김진숙의 심정은? 말할 수 없는 고마움 반가움 미안함이다. 나중의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무조건 가슴 벅찬 일이다. 그런데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 같은 자기 돈 들여 버스를 대절하여 김진숙에게 나름의 멋진 보답을 해보이겠다는 판국에, 근데 바로 전날 밤, 그 고맙고 반갑고 미안한 시간을 눈 뜨고 못 보겠다는 식으로 사측의 갑작스런 농성장 침탈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얼마나 놀랐을 것인가. 천하의 김진숙이라도 놀랐을 것이다. 무엇보다 농성장이 침탈되어 내일 희망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낭패를 보게 될까가 제일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문정현 신부위시하여 온갖 노인 분들도 큰마음을 내서 온다지 않는가……. 아무튼 희망 버스 투쟁은 성공리에 끝났다. 그런데 그날 이후…… 김진숙이 잠을 못 잔다. 어떻게 인간이 보름 넘게 한 시간밖에 잠을 자지 않고 있단 말인가!

35미터 허공 중의 크레인 농성이라고 해도, 아무리 수시로 사태가 긴박해진다 해도 하루 3~4시간은 자야 한다. 보름 넘는 날 동안 한 시간의 잠이라면, 그 어떤 강철 같은 몸과 마음의 소유자도 버텨낼 수가 없다. 그 강력한 정신을 가진 노무현 전 대통령도 사망 전 일주일가량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고 했다. 한 번 받은 충격이 진정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하고 마침내 이제 죽고 싶은 심정뿐이라는 김진숙의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김진숙에게 일어나고 있는 어떤 절망적 심경변화의 중요한 증상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지금 김진숙의 눈앞에는 저승길이 희끗희끗거린다고 봐야 한다.

자, 어쩔 것인가. 마음 같아서는 시간을 일거에 멈추어놓고 김진숙 씨를 우주로 데려가 비밀스런 침실에서 한 사흘은 푹 재우고 죽밖에 먹지 못하는 상한 위장도 짱짱하게 고쳐서 다시 크레인으로 돌려보내고 싶다. 정말 이런 상상까지 든다.

결국 나는 '김진숙 씨, 그만 내려오세요!' 하고 맘속으로 수없이 외치게 된다. 그러나 나 하나가 아니라, 수백 수천 명이 '내려와라'고 해도 내려올 사람이 아니다. 아니 김진숙에게 내려오라고 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는지 모른다. 8년 전 김주익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지회장은 꼭 지금의 김진숙과 같이 100일 넘게 85호 크레인에서 혼자 농성을 하다가 그해 추석 즈음,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갈 때, 그의 크레인이 밤새 몇 바퀴를 돌았다고 했고 그리고 목을 맨 채 죽어나왔다.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곽재규 씨는 그후 며칠 뒤 공장 안에서 도크 아래로 투신하여 목숨을 버렸다. 그들은 김진숙의 '20년 지기'라는 친구들이었다. 그 후 8년 동안 겨울에도 냉방에서 잤다는 김진숙은 그들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 김진숙은 두 사람의 목숨에다 자기의 목숨까지 얹어 제값을 내놓으라고 한진중공업 재벌과 이 나라 정부, 아니 한국 사회 전체와 싸우고 있는 사람 같다. 자본이 언제라도 결정하면 구조 조정은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몸 무거운 한국 사회를 혼자 들어올리겠다는 처절한 투쟁 같다.

보름 동안 한 시간밖에 자지 못한 김진숙에게 2차 희망 버스 때까지 크레인을 지켜달라는 요구를 누가 감히 할 수 있겠는가. '제발 크레인 운전실에서 졸도해 쓰러져라, 용역들에게 업혀 내려와라, 병원 중환자실에서 정신 차려라, 이번 싸움은 포기하라' 나는 이렇게 바라게 될 뿐이다.

인간의 정신은 때로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지만, 그 초인성 속에서도 한없이 정직하게 물리적 변화를 따르게 되어 있다. 뇌혈관이 터지거나 더 견딜 수 없어서 허공으로 몸을 던지기 딱 좋은 상황이다. 그는 지금 악마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김진숙은 지금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다.

절대 스스로 내려올 사람이 아니니 이제 현실적인 방법은 하나뿐이라고 판단한다. 어서 빨리 노련한 의사가 올라가 김진숙을 진찰하고 하루 3~4시간은 잘 수 있는 미량의 안정제와 수면제를 처방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세'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의 예상이 객관적으로 틀리지 않겠지만,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2차 희망 버스를 타고 가서 영도조선소를 새까맣게 메웠다는 한때의 경찰력보다 더 많은 숫자로 조선소를 메우고 어서 빨리 김진숙을 안심시키고 비록 크레인에서 내려오게 하지는 못해도 사람들의 뜨거운 마음의 힘을 그녀에게 불어넣어주어 2차 희망 버스의 날 하루만이라도 우리 모두가 김진숙을 푹 재우는 것이다. 우리 믿고 오늘은 제발 잠 좀 자세요!

김진숙을 지키고 있는 열 몇 명의 해고 노동자 분들에게 고개 숙여 때늦은 감사를 드린다. 나이 육십 칠십 할머니가 되어서도 우리 모두의 마음을 흔들고 또 때로 깊은 침묵에 빠뜨리게 하는 빛나는 말과 글을 할 수 있도록 글쟁이 김진숙을 죽이지 말고 꼭 살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