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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3.0]④`아버지는 정규직 아들은 비정규직` 해법은

<창간기획·1부>역할모델, 대한민국이 해보자
獨 일자리 나누기 프로젝트 `하르츠 개혁` 타산지석
공정사회 첫걸음은 가치 공유..日 상생·배려 배울만

 

[이데일리 정태선 기자] "50~60대 아버지는 앞바퀴를 끼고, 20~30대 아들은 뒷바퀴를 달고, 아버지는 정규직-아들은 비정규직." 지난해 11월 현대차 울산공장은 비정규직 파업으로 들끓었다.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였다. 현대차 소속의 정규직근로자와 같은 감독· 지휘 아래 동일한 일을 하고 있는데 차별받는 것을 바로잡아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파업 현장에는 정규직 작업반장 아버지를 둔 비정규직 아들이 300여 명 이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아버지는 정규직, 아들은 비정규직"


일자리를 둘러싼 갈등은 노사뿐 아니라 노노간 더 나가 세대, 계층 간의 갈등이다. 부의 대물림-빈익빈 부익부로 이어지며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한 더욱 심화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고용 없는 성장`시대에 이미 진입했다. 수출과 내수, 생산과 소비 등 모든 부문에서 고용창출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 현대차 파업 현장. 노사문제는 노동자와 사용자라는 계급간 대립을 넘어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세대간·계층간·노노간 갈등의 핵심 고리가 됐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우리나라 고용구조 및 노동연관 효과' 보고서를 보면 2007년 전 산업의 평균 취업계수는 8.2명으로 전년의 8.4명에 비해 0.2명 떨어졌다.

2000년 10.9명이었던 취업계수는 7년 새 2.7명이 감소했다. 취업계수는 10억원어치를 산출할 때 발생하는 취업자 수다.

최종 수요 10억 원당 직·간접적인 취업유발인원을 나타내는 취업유발계수도 2000년 18.1명, 2005년 14.7명, 2006년 14.3명, 2007년 13.9명으로 빠르게 줄고 있다. 특히 한국경제의 핵심 업종인 전기·전자기기의 취업유발계수가 6.5명으로 2000년 14.5명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2007년 총 취업자의 고용 형태를 보면 상용직의 비중이 53.5%로 2000년 51.1%에 비해 커졌으나 비정규직 등 임시·일용직 비중은 13.4%에서 17.9%로 더 크게 상승했다.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고, 그나마 어렵사리 구할 수 있는 일자리도 `비정규직`이 점차 더 흔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는 무위도식하면서 취업 활동을 아예 단념한 '비구직 청년 무업(無業)자'가 100만 명을 넘었다. 그렇다고 아버지 일자리를 뺏어서 아들에게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 일자리 나누기 `하르츠 개혁` 주목할만

제조업 중심의 수출주도형 우리 경제 체질을 구조적으로 대수술 하지 않는 한 해답은 없을까. 비슷한 경험을 한 나라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수도 있다. 독일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 중반까지 고속성장, `라인 강의 기적`으로 불렸지만 90년 동독과 서독이 통일하면서 통일 후유증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극심한 불황에 빠졌다.



▲ 통일 후유증을 극복하고 옛 명성을 되찾은 독일은 좋은 모델이다. 독일은 일자리 나누기 프로젝트로 실업을 낮추었을 뿐 아니라 경제성장률도 유럽 평균의 두배나 됐다.

최근 독일은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다시 과거의 명성을 되찾고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작년 2010년 경제성장률이 유럽 평균 두 배에 달하는 3.6%를 기록했으며, 올해도 경제성장률도 약 2.5%에 달한 것으로 관측된다.

독일은 2003년부터 노동시장 유연화 방안인 `하르츠(HARTZ) 개혁`을 통해 실업률을 잡는 데 성공했다.

기업들은 불경기 때 근로자의 근무시간을 줄여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 `단축 노동프로그램(Kurzarbeit)`을 가동했다. 근로자를 해고하는 대신에 근무시간을 줄이면 정부가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제도. 경기가 다시 살아나면 새로운 근로자를 채용하지 않아도 되고, 기존 근로자의 경험과 기술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독일은 이러한 근로시간단축제도 등을 도입해 OECD 회원국 중 금융위기 이전보다 실업률이 낮아진 유일한 국가가 됐다. 덴마크는 역시 실업률이 93년에 9.6%까지 증가했지만 90년대 중반 직무순환제, 휴직제도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지금은 OECD 국가 중 가장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 `돈` 보다 `가치` 나누기가 앞서야

단순히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덜 일해서 일자리만 늘어났다면 독일이나 덴마크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완전고용을 지향하는 거시경제정책, 유연한 노동시장, 탄탄한 사회안전망이라는 정책이 결합한 결과였다. 아울러 필수적인 요소가 `사회적 파트너 간의 사회협약`이 꼽히고 있다.

우리사회 각계각층에서는 노동시장이 유연해져야만 고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데는 의식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수반해야할 사회안전망 확충이나 노사정간 `사회적 대화` 노력이 빠져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 때문에 `일자리 나누기` 역시 멀쩡한 일자리를 쪼개 숫자 늘리기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닐까 노동계로부터 의심을 받고 있다. 먼저 시간제근로에 관한 차별부터 없애고 미리 보호장치를 마련하라는 것이다. 탄력적근로시간 역시 `노동시장의 유연화=자유로운 해고`를 연상시키면서 노동계의 반감이 크다.



▲ 대지진과 방사선 누출로 일본인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지만 더 힘든 상황에 처한 남들을 배려하는 인류애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는데 있어서도 어떻게 부(富)를 나눌지에 대한 이론적 대안보다 `함께 한다`는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먼저다.

최근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공정사회`의 실천도 일자리 창출로부터 시작된다는 의견이 다수다.

새로운 개념의 `초과이익 공유제` 등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나누지 못하면 공멸이라는 `가치 인식`의 공유다.

9.0의 초대형 강진에도 남을 먼저 배려하는 일본인의 수준 높은 시민의식은 잦은 자연재해와 싸워오면서 축적된 지혜다. 누가 강요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생존을 위해 상생(相生)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덕분이다.

노사는 흔히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사이라고 한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라는 뜻이다. 국시(國是)로 삼아야 할 만큼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면, 가치공유를 위한 사회적 대화가 먼저 활성화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