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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농협중앙회 개혁, 이대로 좌초하는가 / 박진도
박진도
충남대 교수·
충남발전연구원장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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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도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일부 경제사업을 지주회사화하는 농업협동조합법 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94년 이래 농업계의 오랜 숙원이자 농협 개혁의 핵심 사항인 중앙회 신경분리를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농협의 향후 50년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일관되게 연합회 방식의 농협중앙회 개혁을 주장해온 필자는 이번 농협법 개정에 대해 깊은 유감과 우려가 있다.

이번 농협법 개정으로 농협중앙회는 협동조합 중앙회로서의 정체성을 거의 완전히 상실하게 됐다. 그동안 농협중앙회가 비난을 받아온 표면적인 이유는 ‘돈장사만 하고 경제사업은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본질은 현행 농협중앙회가 형식적으로는 회원조합의 연합회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조합원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농협중앙회가 회원조합을 지배하는 자체 사업조직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농협중앙회는 농협금융지주회사와 농협경제지주회사를 자회사로 거느리는 거대 지주회사로 확대개편됐다. 농협중앙회가 출자해 전국 단위의 금융지주 및 경제지주를 설립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이는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에 기초한 농협중앙회의 개혁이 아니다. 농협중앙회의 사업구조를 주식회사로 개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로써 농협중앙회에 대한 회원조합이나 농민조합원의 통제는 훨씬 더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필자는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를 통해 농협중앙회가 비사업체로 전환해 우리나라의 협동조합 섹터의 중심체 구실을 할 것을 기대했다. 이 시각에서 보면, 농협중앙회의 자체 사업을 지주회사로 개편하는 데 수조원의 국민혈세를 지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이번 농협법 개정은 농협경제사업의 활성화를 명분으로 하나, 본질은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통한 농협금융사업의 합리화이다. 금융지주의 설립이 농협금융사업의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하나, 2009년 말 정부가 농협법 개정안을 제출할 당시의 분명한 문제의식은 금융위기에 대응해 농협의 금융사업을 합리화하는 것이었다. 그에 비하면 이번에 경제사업 활성화 계획 수립 및 추진 의무 부과, 경제사업에 대한 필요자본의 우선 배분 등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한 조항들이 삽입됐다. 이것으로 국회와 정부는 개정 농협법을 정당화한다.

농협중앙회에 대해 농협경제사업 의무를 법적으로 부과하거나 경제사업본부를 경제지주회사로 전환한다고 해서 농협중앙회가 지금까지 잘못하던 경제사업을 잘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순진한 생각이 아닐까. 농식품부 약속대로 중앙회 자본금의 30%가 배분되면, 거의 무자본으로 경제사업을 해오던 입장에서 보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농협지주회사가 경제사업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유통 자회사 설립 등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지금의 경제사업본부보다 더 큰 손실을 초래해 농협 전체의 안정성을 해칠 가능성은 없을 것인가.

농협경제지주회사는 농협중앙회의 자체 사업조직이고 일정한 이익을 내야 하는 주식회사인 한 대형 농업유통자본과 차별성이 없다. 경제지주회사가 자체 경제사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경제사업을 놓고 회원조합과 경합해 회원조합 혹은 연합조직의 경제사업의 발전을 저해할 개연성이 높다. 개정 농협법은 지역농협이 중앙회 등에 농산물의 판매 위탁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지만, 그 조건·절차 등 세부사항은 중앙회 등의 대표이사가 따로 정하도록 하여 이 조항도 사실상 의미가 없다.

농협의 경제사업 활성화 명분으로 시작된 농협 개혁이 이번에도 농협중앙회 몸집 불리기로 끝나고 말 것인가. 경제사업 역량 강화, 농협경제지주회사에 대한 회원조합과 농민조합원의 통제권 확립 등을 통해 농협경제지주가 농민조합원의 이익에 복무하는 길은 있는 것인가. 농협중앙회는 2017년까지 여타 경제사업과 상호금융을 지주회사에 완전히 이관하고 지도·감독·교육·협동운동에 전념하는 비사업법인으로 발전할 길은 있는 것인가. 정부와 국회, 농협의 답변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