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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도 신념도 포기못해”…법조인, 감옥을 택하다
사법연수원 수료한 백종건씨 ‘양심적 병역거부’
판검사 임용 물건너가 변호사도 출소뒤 5년 ‘금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소수자 인권 위해 일할래요”
한겨레 임지선 기자기자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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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종건(26)씨
백종건(26)씨의 이메일 아이디는 ‘lawyerbaek’(백변호사)이다. 법대에 다닐 때 사법시험을 준비하며 만든 계정이다. 검사를 지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백씨는 어릴 때부터 법조인의 꿈을 키웠다. 2008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지난 1월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2월 들어 연수원 동기들은 판검사, 변호사, 군법무관 등으로 각자의 길을 갔다. 그러나 백씨는 ‘교도소행’을 택했다. 법무사관 후보생 입대일이던 지난 10일, 백씨는 입대 대신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사법시험 합격자 중엔 처음 있는 일이다.

병역법 위반으로 1년6개월의 징역형을 받게 되면 ‘법조인 백종건’의 미래는 암담해진다. 판검사 임용은 물론 변호사 등록도 출소한 뒤 5년 동안은 할 수 없다. 일반 기업체 취직도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종교적 신념을 버릴 수 없었다. 그는 총을 들지 않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다.

“저는 신념에 따라 총을 들지 않겠다고 다짐한 사람일 뿐입니다. 총을 드는 것 외에 어떤 종류의 대체복무라도 하고 싶지만 현재로선 방법이 없네요.” 12일 저녁 경기도 고양시 왕국회관에서 만난 그는 양복에 넥타이를 맨 단정한 모습이었다. 많은 신도들이 그의 손을 잡고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눴다. “저쪽 여성분의 첫째 아들은 얼마 전 출소했고 둘째는 복역중이죠. 저 형은 지금 병역거부로 재판이 진행중이고요.” 백씨가 담담하게 설명했다.

2월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로 1년6개월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사람은 전국에 955명이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처벌을 받게 된 이래 가장 많은 숫자다. 지난 반세기 동안 1만5000여명이 총 들기를 거부하고 감옥에 갔다.

백씨에게 군 복무는 살아오면서 가장 큰 고민이었다. 병역 면제를 받으려고 중학교 3학년 때 자퇴할 생각도 했다. 아예 사법시험을 포기할지도 고민했다. 그때마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살라”던 할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겼다. 노무현 정부 때 ‘국민과의 대화’에 나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더니, 대통령이 백씨의 손을 잡고 “힘내라”고 말해줘 잠시 희망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대체복무제 도입은 기약 없이 미뤄졌고, 그즈음 연수원에 들어간 백씨는 ‘성적을 잘 받아도 판검사는 물론 변호사로 살기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반복적인 슬럼프에 시달렸다고 한다.

연수원에서 만난 법조계 선배들도 그를 많이 걱정해줬다. “법무관은 4주 군사훈련만 하니까 일단 입대한 뒤 사격훈련만 빼달라고 부탁해보라”는 조언부터, “네 신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신념을 지키려는 너를 존중한다”는 격려도 많이 들었다. 일부 선배와 동기들은 “우리가 변호인단을 구성하겠다”고 응원했고, 한 검사 선배는 “널 어떻게 기소하느냐”며 한숨을 짓기도 했다.





입대일이던 10일, 그는 바닷가에서 일몰을 바라보며 “스스로 담대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왜 겁이 나지 않겠어요. 연수원 시절 교도소 견학도 했는데….” 그는 앞으로 재판이 얼마나 걸릴지, 언제쯤 복역을 마칠지 알 수는 없지만, 하려는 일은 뚜렷하다고 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공익변호사그룹 공감과 같이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변호사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