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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벗으려다…‘재정 악화’ 또다른 위기
빚더미 국가들, 세금 올리면 가계·기업 부담으로
한국도 수출 타격·외국돈 과다유입 등 부작용 커
한겨레 박현 기자기자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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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인위적 부양의 덫 진단 & 전망]

미국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지난 27일 전격적으로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이번에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된 것은 일본의 국가부채가 너무 많은데다가 정부의 재정적자가 당분간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경제성장률도 낮은데 물가까지 하락하고 있어 명목가격으로 평가한 일본의 경제규모가 20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점,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사회보장 비용이 늘어나고 있는 점, 일본 정부가 재정을 개선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지 않은 점 등이 이번 신용등급 하향 조정에 영향을 줬다.

하향 조정 자체가 큰 문제를 불러일으킬 사건은 아니다. 일본의 정부부채가 많고 재정적자가 심각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므로 이것 때문에 신용등급이 떨어졌다고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또 일본 정부가 조만간 재정적으로 파산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경제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정부부채가 많더라도 경상수지가 흑자를 기록하고 있거나, 그 나라가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갖고 있거나, 정부부채가 주로 내국인들에게서 빌린 것이라면 재정위기 발생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에는 이 세 가지에 모두 해당된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확연하다. 그리스나 포르투갈은 경상적자가 국내총생산의 10%를 초과할 정도로 엄청나지만, 일본은 3% 이상의 흑자를 내고 있다. 유로화도 엔화와 마찬가지로 기축통화이기는 하지만, 이들 국가들이 유로화를 마음대로 발행할 수는 없기 때문에 기축통화국의 지위는 갖지 못한다. 그리스나 아일랜드 같은 나라는 정부부채 중에서 절반 이상이 외국인들에게서 빌린 것이지만, 일본은 5% 내외에 불과하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보면 일본이 당장 큰 재정위기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번 일은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국가 재정 문제를 다시 한번 환기시켜주고 있다. 아무리 선진국이라 하더라도 재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큰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은 평범한 진리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이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지금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정부가 돈을 쏟아부었기 때문이지 금융위기를 몰고 왔던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의 정부부채도 국내총생산의 90%를 넘어서고 있어 유럽 재정 위기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금융위기 발생으로 민간의 소비와 투자가 크게 위축되자 정부가 대신 돈을 풀어 경기를 회복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가 빚더미에 올라앉고 있는 것이 냉정하게 판단해 본 현재의 세계 경제 모습이다.

최근 미국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해서, 정책 담당자나 주식 투자자들이 흥분하고 있다. 분명 반가운 소식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회복은 재정 악화를 대가로 지불하고 얻은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회복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다음에는 당연히 악화된 재정을 치유하는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재정적자를 치유하려는 움직임이 향후 2~3년 내 활발히 진행될 가능성이 높으며, 치유 기간은 생각보다 훨씬 긴 5~10년 정도가 걸릴 가능성도 있다. 그때에는 어느 나라나 재정적자를 줄이고자 노력할 것이다. 세금은 인상되고 정부는 지출을 줄일 것이다. 이는 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들이다. 세금이 늘어나면 같은 소득을 벌더라도 쓸 수 있는 돈이 줄어들어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재정적자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는 정부도 덩달아 지출을 줄이기 때문에 경제 전체적으로 수요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다.

상황이 이보다 더 비관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다. 그것은 물가가 빠르게 상승하는 이른바 인플레이션 환경이다. 세금만으로 적자를 줄이기 어려워진다면 정부는 돈을 찍어 빚을 해결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것이다. 돈을 찍어 빚을 갚으면 그 자체로도 빚이 줄어들 뿐 아니라 돈이 많이 풀려 물가가 크게 오르면 빚 부담도 한결 가벼워진다. 지금 1만달러를 빌렸는데 물가가 너무 빨리 올라서 2~3년 뒤에는 1만달러가 별것 아닌 돈이 된다고 가정해 보면, 인플레이션 환경에서 빚 부담이 왜 줄어드는지 쉽게 상상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선진국의 가계나 기업은 세금 증가에 물가 불안까지 이중고에 시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