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참여마당

자유게시판 로그인 없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시키려 ‘꼼수’ 배우는 기업들


크게 작게

인사·노무담당자 대상 특강 현장
“상여금·식대·교통비 기본급화하면
같은 임금 주고도 법 위반 피해”
노동계 “최저임금 인상 취지 훼손”
고용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해당”
“임금체불은 직원이랑 합의하면 처벌 안 받지만 최저임금법은 처벌받아요. 왜 줄 돈 다 주면서 법 위반을 하는 거죠?”

최근 서울의 한 인사·노무 교육업체가 기업 인사·노무담당자를 대상으로 연 ‘최저임금 대응 방안’ 교육에서 강사가 기업 인사담당자들에게 강조한 말이다. 이 업체는 정부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6.4% 오른 시급 7530원으로 고시한 이후 기업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최저임금 특강을 3차례에 걸쳐 열었다.

<한겨레>는 이 강의를 수강해 기업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확인했다. 강사가 교육한 내용은 임금을 올해와 같이 지급하거나, 임금인상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임금체계를 개편해 법 위반을 막을 수 있는 방법들이었다. 강사는 엑셀 프로그램을 띄워놓고 임금총액을 현행 액수와 같게 한 뒤, 법 위반이 안 되게 기본급을 산출하는 방법을 직접 시연했다. 강사는 “회사 지출이 최소화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하라”고 권했다. 수강생들은 쉬는 시간마다 강사를 찾아 강의 내용에 대한 질문을 계속했다.

이날 특강에서 나온 최저임금 대응 대책은 △상여금 기본급화 △식대·교통비 기본급화 △최저임금 미달분만큼 조정수당 지급 등이었다. 강사는 “통상임금에는 포함되지만, 최저임금 산입범위엔 포함되지 않는 임금항목을 기본급화하라”고 강의 내내 강조했다. 이는 최저임금법 시행규칙의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연차·시간외 수당 책정의 기본이 되는 ‘통상임금’ 산입범위와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연 단위’로 책정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는 포함되지만, 최저임금에는 산입되지 않는다. 최저임금 위반 여부는 월 급여 총액을 소정근로시간으로 나눠 ‘시급’이 최저시급보다 낮은지를 판단하는데, 이에 따라 ‘월’을 기준으로 책정된 상여금이 아니라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선 제외된다. 원래 기본급과 상여금을 분리해 지급했던 것은 그동안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3년 대법원 판결 이후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서 기본급을 적게 유지할 이유가 사라지게 됐다. 이에 따라 상여금을 기본급에 녹이면, 같은 임금을 주고서도 최저임금 위반을 피해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최저임금 산입범위에는 빠져 있는 식대를 기본급화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보통 식대는 월 10만원인데, 식대를 기본급에 포함하면 올해 대비 내년 최저임금 월 인상분 22만1540원(주 40시간·월 209시간 기준) 가운데 상당 부분을 해소할 수 있다.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통신비·교통비도 기본급 산입을 권하는 항목에 포함됐다. 최저임금 위반이 되는 직원의 수가 적을 경우엔 해당 직원들만 대상으로 미달분만큼의 ‘조정수당’을 지급해도 된다는 방법도 제시됐다.

문제는 이런 식의 ‘조삼모사’로 인해 최저임금 언저리에 있던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에도 임금이 오르지 않고 제자리걸음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는 ‘저임금 노동자의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소득주도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취지에 어긋난다고 노동계는 비판한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변호사)은 “기존 임금체계를 유지했을 경우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임금이 올라야 당연한데, 사용자의 임금체계 개편으로 임금이 인상되지 않는다면 최저임금법 취지를 잠탈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런 식의 임금체계 개편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을 노동자들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할 경우엔 과반수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당 강의에서 강사는 “임금총액에 변동이 없고, 기본급이 늘어 시급이 오르기 때문에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아니라서 노동자들의 별도 동의가 필요 없다”고 밝혔지만,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상여금·수당 조정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영세·중소기업이 밀집한 서울디지털단지에서 활동하는 노동단체인 ‘서울남부지역 노동자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 이규철 조직위원장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선 사용자에게 반드시 절차를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노조 가입 등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려는 사용자의 꼼수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809512.html?_fr=mt1#csidx4cf29323714865a84de145d702912ab